“법원 근처에 오니까 악취가 진동하는구만.”

변호사인 내가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본 적이 있다. 고통을 당하는 한 시민으로서. 내게 소송을 맡겼던 여자가 나를 고소하고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법원에 청구했다. 내가 상대편으로부터 돈을 받아먹고 소송을 불리하게 진행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 나름 양심을 지켜왔다. 배신감과 분노가 끓어 법정에 나가면 자제하기 힘들었다. 나는 법원장을 지낸 로펌 대표에게 사건을 맡겼다.
“그 담당 재판장, 내가 데리고 있던 판사야.”
자신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마음이 놓였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였다. 비싼 착수금이었다. 사건은 어려울 게 없었다. 나는 오해를 받을 행위를 한 게 없었다. 그러면 내가 변호사에게 요구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가 공감해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재판장에게 “그 사람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한마디였다.
재판은 질질 끌렸다. 그 사건의 조정을 맡았던 전직 대법관은 중얼거리듯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뭔가 있기에 그 여자가 펄펄 뛰겠지.”
그런 선입견에 할 말이 없었다. 정직을 상품으로 하고 싶었던 변호사 경력이 한순간에 ‘뭔가 있는 사람’이 됐다. 어느 날 내가 선임한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법원의 관례상 이런 경우 손해배상금이 5억 원 정도 나오는데 인생길에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주고 말아.”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는 변호사가 아니라 계속 판사였다. 내가 선임한 로펌에서 법원에 낸 서류들을 봤다. 그 어디에도 나의 억울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다. 판례와 형식논리의 나열이었다. 내가 직접 글을 써서 담당 재판장에게 보냈다. 나의 처절한 심정을 담았다.
그게 효력을 발휘했는지 똥 밟고 넘어지는 일을 피하게 됐다. 그 얼마 후 로펌에서 성공보수를 지급하라는 독촉이 왔다. 예상했던 5억 원이 부과되지 않았으니까 성공이라는 것이다. 화가 났다. 의뢰인의 마음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대형 로펌의 파트너로 일하는 친한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
“비까번쩍하게 차려놓고 사기 쳐. 그게 로펌이야.”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의 농담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기가 통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AI(인공지능)가 변호사의 일을 다 한다. 씁쓸하게 웃는다. 내 변호사가 했던 사무적인 일을 몇 십배 몇 백배 더 잘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4만 명 시대에 AI까지 등장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변호사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싼 착수금을 내고 로펌 대표를 선임하면서 기대했던 것은 판례였을까, 아니면 법률 지식이었을까. 아니었다. 단 한마디였다.
“이 사람,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 한마디를 내 변호사는 끝내 해 주지 않았다. 공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돈을 주는 한 사람의 고객일 뿐이었다. 일반적인 변호사들도 로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변호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AI는 의뢰인을 보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AI는 절대 못하는 공감 능력. 교대역 지하철 광고판의 변호사들은 오늘도 환하게 웃고 있다. 그들을 보며 묻는다. 당신들은 의뢰인에게 그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가. 행인이 말한 악취는 아직도 진동하고 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