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19일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노무현 대통령 일행. 이번 특검 법안이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 ||
그러나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청와대도 삼성 못지않게 이번 특검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그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특검법안을 수용하면서도 특검 수사에 대한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거론했던 점이나 한나라당이 특검 법안에 노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당선축하금’을 수사대상으로 포함시키려 한 점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특검이 노 대통령과 청와대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이라 여기고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삼성과의 물밑교감설에 휩싸여온 바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을 이끌고 있는 ‘2인자’ 이학수 부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점과 얼마 전 삼성 법무실장에서 물러난 이종왕 전 실장이 노 대통령 사시 동기 모임 ‘8인회’ 일원이라는 점, 그리고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의 정보통신부 장관 임명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대사 발탁 등이 모두 구설수에 올랐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 재판과정에서 말로만 무성했던 이건희 회장 소환이 현실화되지 않은 점도 청와대와 삼성 간의 인적 네트워크와 결부지어 보는 시각도 더러 있었다.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가 있기 얼마 전부터 청와대 안팎엔 김 변호사 관련 괴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김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관리를 폭로할 예정이며 그가 언급할 주 로비대상 중 하나가 청와대일 것’이란 내용이었다. 김 변호사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던 작은 조직이며 국세청 등에 더 많은 로비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변호사가 직접적으로 청와대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기관인 국세청이 언급되며 청와대를 향한 의문이 제기될 무렵, 이용철 전 청와대 비서관의 폭로가 이어졌다. 전직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스스로 나서 ‘삼성이 내게 돈을 주려 했다’고 밝히면서 청와대가 삼성의 로비 대상이었음을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로써 ‘삼성 로비파문에 청와대가 당혹스러워 할 것’이란 소문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향후 정치 일정을 볼 때 특검 진행 과정이 청와대를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다. 특검 법안을 만든 정치권에 대선정국의 와중에서 ‘반노무현’ 색채가 공공연하게 발산되고 있는 까닭에서다. 여·야가 특검 법안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당선축하금’을 물고 늘어진 한나라당이나 지금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청와대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을 것이란 설명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다. 그나마 정서상 가까웠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마저 유세를 통해 “노무현 정권에서 정동영 정권으로 바뀌면 곧 정권교체”라며 청와대와 담 쌓기에 한창이다. 청와대를 비난하는 것이 선거의 기본 전략인 것처럼 여겨지는 정치권에선 특검이 소위 ‘당선축하금’을 손대기 시작하면 선거 전략상으로도 여야를 막론하고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퍼부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수사기간이 105일까지 가능한 이번 특검은 12월 중 시작을 전제로 내년 3~4월까지는 삼성 비자금 파문을 계속해서 달궈나갈 전망이다. 청와대가 당초 이번 특검 수용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던 배경엔 내년 4월 예정인 총선에 대한 고민도 깔려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만약 현재 지지율대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승리할 경우 기세를 몰아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서기 위해 국정 실패세력에 대한 책임론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삼성 비자금 중에서 특히 ‘당선축하금’을 향한 특검의 시선에 불을 지피려 할 것이다. 이는 “좌파정권 타도”를 부르짖어온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선기간 동안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등 반삼성 정서를 이끌어온 세력은 금산분리 완화 주장을 펼쳐온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금융업 확대를 도모하는 삼성과 한통속으로 싸잡아 비난해 왔다. 민노당을 비롯 몇몇 정치권 인사들은 “새롭게 정권을 창출한 이 후보 진영이 삼성에 대한 일방적 비난여론 분산을 위해 노 대통령 세력에 대한 부패 이미지 부각에 더욱 매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역전극을 통해 당선된다 해도 삼성 특검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렵사리 대선승리를 거머쥔 정 후보 진영이 제1당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대선기간 동안 등을 돌려온 친노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어느 정도 화해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향해 부패세력이라 성토해온 정 후보 진영이 삼성과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을 받을지 모르는 노 대통령 세력을 감싸주는 게 총선 승리를 위한 올바른 판단일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으로 임명될 특별검사가 법조계 선후배 관계인 검찰조직을 상대로 한 수사에는 껄끄러워할지 모른다며 노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보다 큰 힘을 쏟을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권력 최고위층에 대한 면밀한 수사만큼이나 ‘성역 없는 수사’를 입증할 만한 호재가 없다는 점 또한 청와대를 향한 맹공을 예상케 한다.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성공으로 지지율 급등을 이뤄낸 노 대통령의 임기 말 심기가 삼성 비자금 파문으로 인해 다시금 불편해지고 있어 앞으로의 향배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