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서로 피하려고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현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 올해는 회장뿐 아니라 20명의 부회장들이 포함된 회장단 재편 여부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 이후 줄곧 사임 의사를 밝혀 온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뜻이 관철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회장단 재편의 중심엔 지난해 말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최태원 SK(주) 회장, 지난해 말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직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힌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이 있다. 2년의 임기가 정해진 회장과 달리 부회장은 따로 정해진 임기가 없다. 본인의 은퇴나 사망 또는 소속 그룹이 없어지는 등의 불가피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부회장직을 유지한다.
SK 최 회장의 경우 외형상 그룹을 대표하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을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에게 물려줬기에, 삼환기업 최 회장은 회사가 법정관리 중이고 경영 일선 후퇴의 뜻을 밝혔기 때문에 ‘은퇴’라는 부회장직 사퇴의 명분을 얻은 셈이다. 재계에서는 SK 최 회장과 삼환기업 최 회장의 사퇴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최 회장 외에도 회장단 사임 의사를 밝힌 인물이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이미 지난 2005년 회장단에 합류한 지 2년 만인 2007년 2월부터 줄곧 회장단 사임 의사를 밝혀왔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전경련 측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여 2005년 회장님이 회장단에 합류를 결정했지만 2년간 활동해 본 결과 회장님의 생각과 달라 탈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동부 관계자는 “전경련이 단순한 친목 모임 외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회의를 느껴 탈퇴를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해 전경련 회의에 앞서 회장단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김 회장은 사임 의사를 밝힌 2007년 이후 사실상 전경련 활동을 접으며,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전경련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회장단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확실한 거리두기를 해온 것이다. 특히 지난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전경련 회장단 간담회 때도 김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 행사에 불참한 인사는 김 회장 외에도 삼성 이건희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었다. 삼성 이 회장과 코오롱 이 회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한화 김 회장은 옥살이를 하고 있어 물리적으로 참석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불참한 인사는 김 회장뿐이었다.
과거 소위 ‘반도체 빅딜’ 사건 이후 전경련과 담을 쌓고 지내는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이번 간담회에는 참석했다는 점에서 김 회장의 전경련과의 거리 두기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는 해석이다. 동부 관계자는 “그동안 전경련 행사에 참석하지 않다가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는 자리라고 해서 나가면 모양새가 이상했을 것”이라며 “또 행사 당일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김 회장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김 회장의 뜻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에서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특별한 사유가 없는 동부의 경우 회장단 탈퇴를 만류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동부그룹이 지난 8일 채권단과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본계약을 체결하고 다음달 인수대금 납부만 남겨 놓은 가운데, 최대주주는 동부그룹의 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하이텍에 이어 동부CNI(IT 서비스), 동부라이텍(LED 조명), 동부로봇(산업용 로봇) 등도 인수에 참여할 계열사로 확정됐다고 한다. 대부분 그룹의 전자 계열사들이다. 동부 관계자는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경우 기후 등 지리적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가전제품”이라며 “동부하이텍의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가 스마트한 맞춤형 제품을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커피 마시며 시리얼 눈독?
국내 분유업계 1위 남양유업은 ‘자린고비 경영’으로 유명하다. 매출이 1조 원을 넘고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지만 40년 넘게 서울 남대문에서 ‘세입자’로 살고 있다. 임원수도 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적다. 현금 보유를 중시하고, 연구·생산 설비 투자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창업주 고 홍두영 회장의 지론 때문이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유제품 일변도의 단출한 형태를 취하며 오랫동안 안정적 성장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2세인 홍원식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되 출산율 저하 등 시대 변화에 맞춰 남양유업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한 우물’만 진득하게 파던 남양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지난 2010년 12월 ‘프렌치카페’로 커피 시장에 전격 진출하면서부터다. 남양은 후발업체임에도 커피 사업에서 지난 2011년 약 1000억 원, 지난해 약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커피믹스 시장점유율 23%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1800억 원을 들여 전남 나주에 커피믹스 전용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커피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남양이 조금 더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남양이 커피 사업에 이어 시리얼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남양유업 측은 “사실이 아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업계 관계자는 “남양 직원으로부터 이 회사가 곡물에 기능성 성분을 코팅한 ‘기능성 시리얼’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다수의 국내 식품업체들이 시리얼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곳간을 든든히 채워 놓고 10년 넘게 무차입 경영을 펼쳐 온 남양유업의 경영 기조가 바뀔지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