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오 란자가 주연을 맡은 <위대한 카루소>.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준인 450만 달러 흥행 기록을 세웠다. |
최근 할리우드의 이슈 중 하나는 32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나탈리 우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지금까지 사고로 인한 익사로 알려져 있었지만, 재조사를 통해 타살의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로버트 와그너를 소환 조사하게 된 것. 와그너가 소환에 응하지 않는 상태에서, 죽음의 진실이 과연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탈리 우드만이 아니다. 스타들을 둘러싼 의문의 죽음은 항상 있었다. 이번 주부터 스타들의 의문사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그 첫 인물은 마리오 란자. 38세에 세상을 떠난, ‘제2의 카루소’로 불리던 미국의 테너 가수이며 영화배우였던 그는 지금까지 5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성악계의 레전드이기도 하다.
1959년 10월 7일 로마의 한 병원에선 한 남자의 절규가 있었다. 마리오 란자의 운전수였던 그 남자는 병세를 살피러 병실에 들어갔다가 코마 상태에 빠진 란자를 발견한다. 잠시 후 위대한 테너 싱어이자 엔터테이너였던 마리오 란자는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이 발표한 사인은 심장마비. 새로운 다이어트 요법 중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40~50년대에 마리오 란자는 미국의 국민 가수였다. 전설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세상을 떠난 1921년에 태어난 란자는 어릴 적부터 카루소를 우상으로 받들었고, 1942년에 데뷔해 카루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할리우드도 일찍이 눈독 들였지만 그의 연기 데뷔를 방해했던 건, 배우가 되기엔 지나치게 듬직한 체격이었다. 20대 초반에 이미 110킬로그램을 넘었던 그는 마이크 앞에선 성공했지만 카메라 앞에 서기엔 쉽지 않았다. 기회는 왔다. 1947년 할리우드에서 콘서트를 할 때 관객 중 한 명은 MGM의 루이스 B 메이어 사장이었고, 그는 란자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7편의 영화를 찍는 조건이었고, 주급은 750달러였다.
정점은 서른 살 때였다. 자신의 우상인 엔리코 카루소의 전기 영화 <위대한 카루소>(1951)는 당시로선 엄청난 수준인 45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내리막길은 시작되었다.
그는 점점 거만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변해갔고 불규칙한 다이어트로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으며 샴페인과 신경안정제를 섞어 마시는 괴벽은 그의 건강을 앗아갔다. 식욕 억제제의 도움을 받아가며 폭음과 폭식을 즐기는 식생활은 그의 육체를 고문하는 셈이었다. 심장에 누적된 압박은 심각한 상태였고, 여기에 정맥염과 통풍을 앓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콘서트를 하고 영화를 찍었지만 관객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때 그가 돌파구로 삼은 곳은 유럽이었다. 미국과는 달리 유럽에서 마리오 란자는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온 또 한 명의 유명인사가 있었으니, 바로 전설적인 갱스터 럭키 루치아노였다. 같은 이탈리아계로서 동질감을 느낀 루치아노는 란자에게 접근했다.
루치아노는 마리오 란자에게 1959년 9월 나폴리에서 있을 자선 갈라쇼의 무대에 서달라고 했다. 란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갈 정도였으니 잔혹한 갱스터로서는 최대한 예의를 갖춘 부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란자는 루치아노 같은 범죄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고, 제안을 거절하며 “당장 내 집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예의는 거기서 끝났다. 루치아노는 란자의 집을 떠나며 “다시는 노래를 못 부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쇼의 리허설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요청했으나 란자는 변함없었다. 그가 리허설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루치아노의 조직원 두 명이 와서 협박했다. 란자는 합리적인 구실을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 치료를 한다는 이유로 클리닉에 입원했다.
이곳에서 란자는 새로 개발된 다이어트 요법으로 치료받았다. 임산부의 소변에서 추출한 성분을 링거 병에 담아 정맥에 조금씩 투입하는 방식으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에선 합법적으로 시행되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간호사가 몸이 아파 새로운 간호사가 란자를 맡게 되었다. 붉은 머리의 그 간호사가 다녀간 지 두 시간이 되었을 때 란자의 운전수는 병실에서 코마 상태에 빠진 란자를 발견했다. 그의 정맥에 꽂힌 튜브와 링거 병엔 아무 것도 없었고, 란자의 정맥엔 계속 공기방울이 주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란자의 나이 38세였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지만 빨간 머리 간호사의 정체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병원에선 심장마비가 사인이며, 새로운 다이어트 치료 중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공식적인 부검은 없었다. 란자의 장례식 후 그의 운전수는 실종됐고, 란자의 조강지처인 베티 란자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죽음 이후 우울증을 앓던 그녀는 알코올과 약물 과용으로 졸도 상태에 이르렀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되었다. 역시 알 수 없는 죽음이었다. 란자 부부 사이의 네 아이는 매니저였던 테리 로빈슨이 키웠다(막내인 마크 란자는 1991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마리오 란자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진실’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붉은 머리 여자가 란자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는, 부검조차 이뤄지지 않아 영원히 땅 속에 묻히게 됐다. 이탈리아 사회의 어두운 실력자였던 럭키 루치아노가 개입했다는 건 정황상 너무나 명백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리오 란자는 그렇게 ‘미스터리’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