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갤러리에서 '김건희 오빠'한테 가기까지

이 그림은 2022년 6월 대만의 한 온라인 미술 경매에서 한국인 A 씨에게 낙찰돼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낙찰금은 수수료 포함 약 3750만 원. 그림의 소장 이력을 보여주는 프로비넌스나 진품 보증서도 없었지만 진품이라 확신한 A 씨는 지인에게 돈까지 빌려 가며 이 그림을 낙찰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7개월 만에 그림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는 점이다. 2022년 6월 국제우편으로 그림을 수령한 A 씨는 같은 달 이 작품을 B 씨에게 9000만 원에 판매했다. 몸값은 2주일도 안 되는 사이 2배 넘게 뛰었다. 작품을 인수한 B 씨는 그해 7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한미연)에 진품 감정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B 씨는 해당 작품의 소장 이력을 “일본에서 입고된 것으로 이 화백 지인의 소장품”으로 허위 기재했다.
작품 가격은 진품 감정서 발급 이후 다시 한번 치솟았다. B 씨에게 넘어간 그림은 6개월 만인 2023년 1월 김 전 검사에게 최종 1억 4000만 원에 팔렸다. 김 전 검사는 이 그림을 김건희 씨의 오빠인 김진우 씨에게 전달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25년 7월, 특검은 김건희 씨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진우 씨 장모의 집에 걸린 이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특검과 김 전 검사의 주장이 갈린다. 특검은 김 전 검사가 총선 공천을 노리고 김건희 씨에게 그림을 선물했을 것으로 보고 김 전 검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반면 김 전 검사는 그림을 대신 구매했을 뿐 실제 구매자는 김진우 씨라고 반박했다.
#‘전달 여부’ 따진 1심, ‘진품 여부’ 보겠다는 2심
현행 형법은 뇌물 금액을 ‘가액’(물건 가치에 상당한 금액)으로 규정한다. 만약 그림이 진품으로 인정돼 100만 원이 넘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된다. 당연히 인정 가액이 클수록 형량도 높아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검은 이 그림을 진품으로, 김 전 검사 측은 위작이 확실하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다만 1심 법원은 그림의 전달 여부에 집중했다. 이 그림이 얼마짜리인지, 이 화백의 작품이 맞는지 따지기 전에 그림이 김건희 씨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됐는지를 본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그림 구매 비용을 실질적으로 김진우 씨가 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특검이 공소 사실 증명에 실패했으므로 진품 여부와 무관하게 무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2심에 들어서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2심 재판부는 “그림 진위에 대해 1심에서 살피긴 했지만 심리가 충분하지 않았던 건 맞는 것 같다”며 “당심에선 수령 여부뿐 아니라 진위와 가액도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재판부는 최초 낙찰자인 A 씨에게 “만약 이 그림이 이 화백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얼마에 샀을 것 같냐”고 묻기도 했다. 이는 ‘이우환 작품’이라는 전제를 배제했을 때, 해당 그림이 지닌 순수한 시장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 대표 감정기관들 "위작" "진품" 팽팽

진품 의견을 낸 김 씨는 “작가의 서명, 안료, 작품의 연대감 등을 볼 때 위작으로 판단할 만한 요소가 없었다”고 했다. 반면 화랑협회 소속 윤 씨는 “작가의 서명과 채도, 안료에서 발견된 불순물, 캔버스 형태 등을 볼 때 위작임이 확실하다”고 했다.
허위 프로비넌스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B 씨가 소장 이력을 허위로 적시했음에도 한미연에서 진품 보증서를 발급한 것에 대해 김 씨는 “아트 딜러들의 경우 소장 경로 공개를 꺼리는 일도 있다”며 “메이저 갤러리에서 나온 좋은 프로비넌스가 아니라면 작품 자체가 가진 연대감과 기법 등을 우선 판단한다”고 답변했다.
반면 윤 씨는 “미술품 감정은 작가의 생애와 작업 방식, 프로비넌스 등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종합적으로 대조하는 것”이라며 “작품 자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양측 의견은 시종일관 평행선을 달렸다. 작가 서명에 쓰인 안료 채도와 관련해 윤 씨가 “당시 이 화백이 쓰던 안료와 비교해 보면 채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하자 김 씨는 곧바로 “오히려 낮은 편이 아니냐”고 윤 씨에게 되묻기도 했다.
작품 상태에 대해서도 윤 씨는 “이 화백은 1979년부터 못 대신 ‘타카’(스테이플건)를 이용해 캔버스를 고정해 왔는데 이 작품은 1980년대 작품인데도 못이 박혀 있다”며 “설령 못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못이 이렇게 녹이 슬 정도면 정면의 캔버스도 손상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깨끗해서 연대감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김 씨는 “캔버스 상태는 연대감이 자연스럽고, 바닥의 색깔도 이우환 화백이 추구하는 은은한 색상을 띠고 있다”며 “타카를 쓰다가 못을 쓰지 않게 된 건 맞지만 이 화백이 특정 시점부터 반드시 타카만 썼다는 데이터는 없다. 화방마다 마감 방식이 다르다”고 맞섰다.
설전은 10년 전 ‘이우환 위작 사태’로 이어졌다. 앞서 2016년에는 이 화백의 위작이 대대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원은 문제의 그림들에서 진품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가루가 발견된 점 등 과학적 감정을 근거로 위작 판정을 내린 바 있다.
화랑협회 측은 당시 기준을 이번에도 적용했다. 윤 씨는 “고배율 현미경 분석 결과 해당 작품에서도 유리가루로 추정되는 불순물이 검출됐다”며 “이는 2016년 위작 사건 당시 발견된 특징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씨는 “화랑협회의 주장이 맞으려면 진품에선 절대로 유리가루가 나와선 안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비교 모수가 없다”며 “불순물이 발견된 건 맞으나 이는 안료를 빻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김 씨는 10년 전 법원 판단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 의견이지만 당시 재판부의 위작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과수는 미술 감정을 하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며 “판결문 내용이 모두 옳다고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2심 재판부의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주심 판사는 김 전 검사 측 변호인이 2016년 판례를 근거로 신문을 이어가자 “과거 사건을 본 사건에 100% 대입하지 말라”며 두 차례 주의를 줬다. 또, 증인 신문이 끝난 후에는 직접 그림을 가져가 캔버스 옆 못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한편 특검은 결심 공판에서 김 전 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3년에 추징금 4139만 원을 구형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누구보다 법을 준수해야 할 부장검사가 공직 인사와 공천 등 직무와 관련해 1억 4000만 원의 고가품을 제공한 것은 사실상 뇌물 제공과 다르지 않다”며 엄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