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박 명예회장의 입김이 올 정기인사에 변수가 될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포스코 건물 전경. | ||
2월 중 임원인사를 앞두고 있는 포스코 역시 지난 수년간 이른바 ‘이구택 회장 라인’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이 요직에 입성해 ‘이구택 체제’가 견고해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정기인사에서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예기치 못한 인사이동이 일어날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의 배경엔 ‘한국의 카네기’로 불리는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고려가 깔려 있다. 박 명예회장의 입김이 올 정기인사에 변수가 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를 둘러싼 박태준 명예회장의 영향력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포스코 회장을 지낸 박 명예회장은 퇴임 이후에도 제법 오랫동안 포스코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해왔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 2003년 ‘타이거풀스 주식 고가매입 의혹 사건’으로 임기 1년을 남기고 중도하차한 유상부 전 회장이 박 명예회장 사람으로 평가받았을 만큼 최근까지 박 명예회장과 포스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유 전 회장의 잔여임기를 채우고 2004년과 2007년 연임에 성공해 201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이구택 현 회장은 ‘친 박태준’ 세력과 ‘반 박태준’ 세력 간 다툼에서 비교적 중립을 지켰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정기인사에서 박 명예회장 계열 인사들 대신 신흥 세력이 핵심 보직을 꿰차게 되자 업계 인사들은 ‘박태준 시대가 가고 이구택 시대가 열렸다’는 평을 풀어놓기도 했다. 세대교체형 인사를 통해 이 회장이 박 명예회장 여운이 짙게 남아있던 포스코를 본격적으로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가올 2월 정기인사 역시 이구택 회장 체제가 공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돼왔다.
이 회장도 박 명예회장에 대한 예우만큼은 전임 회장들과 마찬가지로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로부터 별도 사무실과 비서진을 지원받고 있다. 포스코 측이 더 해주려했지만 박 명예회장이 정중하게 사양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회장의 조직 장악력이 커질수록 박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조금씩 퇴색해간다는 평가도 흘러나왔지만 포스코 관계자들은 박 명예회장과 이 회장이 결코 견제한다거나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고 역설해왔다.
그런데 최근 박태준 명예회장의 행보가 활발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박태준-이구택 전·현직 회장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뜨거워졌다. 지난해를 뒤덮었던 대선 정국이 박 명예회장에게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이다. 성공한 CEO 출신으로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치 지도자인 동시에 영남 지역에 아직도 박 명예회장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는 점이 잠룡들의 구미를 당긴 것이다.
여러 대선캠프의 구애설이 난무하던 가운데 지난해 9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박 명예회장을 만나 배석자 없이 두 시간 동안 이야길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 화제가 됐다. 이어 11월 출판기념회를 겸한 박 명예회장 팔순잔치 땐 이명박 정동영 후보와 조석래 전경련 회장 등 정·재계 인사 300여 명이 몰려 박 명예회장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당시 참석자 명단이나 잔치 성격 등을 묻는 전화가 포스코에 쇄도해 관계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 박태준(왼쪽), 이구택. | ||
이 당선인과의 여러 인연이 알려진 덕분인지 박 명예회장 입지 강화에 대해 확인되지 않는 여러 소문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정보기관원들과 재계 정보통들 입에 오르내리는 박 명예회장 관련 사안들을 종합하면 ‘포스코 사내 시설에서 여러 인사들과 회동을 가졌다’ ‘새 정부 세력 지원을 받아 포스코 주요 정책에 입김을 넣을 수 있다’ ‘포스코에서 새 별도 사무실과 비서진을 지원해줬다’는 등의 내용들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강력하게 부인한다. 사내 시설은 회사 소속 인사들만 이용할 수 있으며 회사 경영 역시 사외이사 비중이 더욱 커진 이사회 소관이고 기존 사무실과 비서진 외에 박 명예회장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었다는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는 음해세력이 있는 듯하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새 정부 세력이 박 명예회장을 물밑 지원할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거론되면서 박 명예회장 영향력 강화에 대한 시선은 점점 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CEO 출신으로 경제발전 주역인 박 명예회장을 향한 다른 정파의 러브콜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 당선인 소유 논란을 불러일으킨 도곡동 땅 문제가 이른바 이명박 특검의 수사범위에 포함돼 있고 포스코가 도곡동 땅을 특혜매입 했다는 의혹이 아직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보는 시선도 있다.
특검에 부담을 지닌 이 당선인 진영과 포스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박 명예회장과의 유착관계 형성 가능성을 부추기는 대목인 셈이다. 정치권과 재계에 포진한 일부 기관원들과 재계 정보통들은 2월 포스코 정기인사에서 이 당선인 진영과 박 명예회장 구미에 어느 정도 맞는 인사이동이 일어날 가능성마저 거론한다.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이르고 공기업도 아닌 마당에 정부나 외부세력이 내부 인사나 경영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이 포스코의 입장이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 주변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포스코에 미칠 변수를 따지는 시각이 아직도 팽배해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아 박 명예회장(1981~1992년) 이후 최장기간 회장직 수성을 이루면서 조직 장악에도 성공했다는 평을 받은 이구택 회장이지만 아직도 박태준 명예회장의 아성을 뛰어넘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방증인 셈이다. 여전히 ‘포스코’ 하면 ‘이구택’이 아닌 ‘박태준’ 이름 석 자가 떠오르는 현실을 이 회장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세인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