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이건희 이재용 부자, 구본무 구광모 부자, 신격호 신동빈 부자. | ||
이에 대해 몇몇 시민단체들은 “재벌 총수일가가 세금 없이 편법으로 부를 세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반발하고 있다. ‘기부문화의 활성화’라는 취지로 개정된 상증법에 이러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총수일가가 재단 이사장직을 대물림해주면 해당 지분만큼의 영향력 또한 고스란히 유지되는 까닭에서다. 바뀐 상증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재벌가의 공익법인 활용 가능성을 미리 짚어봤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환상형 출자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핵심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전자 지분이 1.86%에 불과한 이건희 회장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삼성생명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금융 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 간 상호 지분 5% 초과 보유 금지’라는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규정에 따라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6% 중 2.26%를 처분해야 한다. 또한 삼성생명 지분 13.34%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도 삼성생명 상장시 금융지주사로 선정되면 비금융계열사 지분들을 전량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상증법이 개정되면서 이건희 회장 일가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현재 삼성생명에선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각각 4.6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두 재단에 대해 10.64%의 삼성생명 지분을 무과세로 추가 증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2.26%나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사 선정을 막기 위한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세금 없이 이 회장 품안에서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지주회사제가 완성돼 있는 LG그룹에선 ㈜LG에 대한 총수일가 우호지분이 48.7%에 달해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 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구광모 씨가 ‘대통’을 이어받게 될지에 대해 LG 측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계인사들 관측대로 구광모 씨의 승계를 가정해본다면 4.45%에 불과한 ㈜LG 지분율을 어떻게 해서 구 회장 수준(10.51%)까지 끌어올리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LG 지분 1% 확보하는 데 1000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한데 유학 중인 구광모 씨가 자력으로 수천억 원의 매입대금을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얼마 전 보유 주식을 계열사 네 곳에 증여했는데 모두 결손법인이라 증여세를 물지 않게 됐다. 롯데에선 해당 계열사들 재무구조 개선 목적이라 밝히고 있지만 무과세 증여인 데다 해당 법인들 모두 신 회장 자녀들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논란을 낳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에선 ‘신 회장의 무상증여로 부실계열사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이로 인해 생기는 이익을 신 회장 자녀들이 취하게 되는 편법상속 기법’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롯데그룹의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삼강(4.46%) 롯데제과(6.81%) 롯데칠성(6.28%) 롯데정보통신(0.94%) 등의 지분을 골고루 확보해 그룹 지배구조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무과세 증여범위가 10%로 확대돼 장학재단 수증한도에 여유가 생긴 만큼 편법 상속 구설수에 오른 신 회장이 향후 재단으로의 증여를 활용해 자녀들의 지배력 강화를 도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진그룹의 경우 ㈜한진에는 인하학원(3.97%), 대한항공에 인하학원(2.71%)과 정석학원(1.96%) 21세기한국연구재단(0.33%), 그리고 정석기업에 정석물류학술재단(4.83%)이 각각 대주주 반열에 올라있다. 아직은 지분 확보가 미약한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이 거액의 증여세를 물거나 지분 매입 비용을 들이는 대신 조양호 회장이 이들 재단으로의 개인 지분 무과세 증여를 통해 2세 지분 강화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최근 자신의 세 아들에게 2000억 원대의 주식을 증여했다. 증여세만 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의 편법 승계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는 긍정적 여론 형성과 동시에 보복폭행 사건 후유증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화그룹에는 ㈜한화 지분 1.83%를 가지고 있는 천안북일학원이 있다. 이 지분은 김 회장 모친이 지난 2006년 증여한 것이다. 김 회장이 앞으로 계속 거액의 세금을 물어가며 증여를 할지 혹은 천안북일학원에 대한 무과세 증여 한도를 활용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벌들의 공익법인 출연을 반드시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공익법인인 만큼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회사가 아닌 공익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벌들의 공익법인 출연을 장려해 장학 사업이나 환경 사업 등 각종 공익 사업이 활성화되는 것은 기업의 사회 공헌으로서 바람직하다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익법인 출연을 경영권 승계 등에 활용하는 경우다. 상증법이 개정되면서 각 기업들은 저마다의 계산법에 분주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의 최한수 팀장은 “법 개정으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익법인을 경영권 승계에 활용할 것이다”라며 “승계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익법인이 우호지분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