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7일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선출됐을 당시만 해도 양당은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혁신당과 합당 조건이 맞지 않으면 연대하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당선 직후에도 민주당 내부에서 혁신당과의 통합·연대를 논의할 기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나왔다.
혁신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신장식 혁신당 대표는 김 대표의 당선을 축하하며 “민주 진보 진영의 연대와 혁신에 힘써주시길 기대한다”며 “혁신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민주당 새 지도부에 “비전과 가치를 중심으로 굳게 연결되는 진정한 연대와 통합의 길”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하고 민주진보 진영 협의체 재가동도 제안했다.
양당 관계에 균열이 나타난 것은 약 열흘 전부터다. 김 대표는 8월 24일 대표 직속 대통합추진단을 설치하고 산하에 ‘조국혁신당 연대분과’를 뒀다. 하지만 혁신당은 사전 협의 없이 당 이름을 건 기구와 담당자를 발표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같은 날 김 대표가 혁신당을 찾아 양당을 “동지”이자 “파트너”라고 규정했지만, 신 대표는 “양당 사이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부터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비공개 회동 이후에는 정치개혁 문제로 충돌했다. 혁신당은 결선투표제 도입과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등을 요구했지만, 김 대표가 교섭단체 요건 완화와 혁신당 합당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대표는 “저희는 개혁을 얘기했더니 흥정이나 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불쾌했다”고 반발했다.
인사를 둘러싼 신경전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8월 30일 이해민 혁신당 의원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으로 발탁하자 혁신당은 이를 정부와의 새로운 협력 모델로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튿날 ‘평택을’ 재선거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과 경쟁했던 김용남 전 의원을 정책위 상임부의장에 임명하자 신 대표는 “대통령의 연대와 통합 메시지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통합 논의 여부를 두고도 엇박자가 났다. 박범계 민주당 대통합추진단장은 9월 2일 양당이 실무적으로 통합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혁신당은 “어떠한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고 즉각 부인했다. 박 단장은 이후 사실관계를 잘못 확인했다며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조국 원장이 이재명 정부의 ‘레드팀’을 자처하며 정부·여당에 쓴소리를 이어가면서 갈등은 거칠어졌다. 조 원장이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의 공소 취소 추진에 경고음을 내자 박선원 민주당 최고위원은 “배은망덕”,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자다가 봉창”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도 지난 3일 “연대는 무조건”이라면서도 혁신당에 “연대를 저해하는 언급은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조 원장은 4일 페이스북에서 “충정으로 객관적 상황과 대처방안을 제시하니 거두절미하고 공격한다”고 맞받았다. 이어 “‘은혜’를 제대로 갚기 위해 경고신호로 ‘대문’을 크게 두드렸더니 시끄럽다며 오물을 투척한다”며 “또 한 명의 ‘반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통령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했다.
양당의 차이는 국회 표결에서도 드러났다. 혁신당은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개정안에 당론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혁신당 관계자는 “앞으로 민주당의 거수기는 안 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혁신당이 같은 민주·진보 진영의 ‘우군’인 만큼 정부·여당과 차이가 있더라도 공개적인 공격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나온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3일 민주당 유튜브에서 조 원장의 최근 발언을 두고 “어찌 보면 우군이지 않나”라며 “부족한 걸 따뜻하게 채워주시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를 갈라치거나 거리를 둬서 정국을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혁신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자신들을 독립된 정당으로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혁신당 관계자는 “‘위성정당’으로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며 “혁신당은 민주당이 합당하자고 하면 합당하고, 연대하자고 하면 연대해야 하는 정당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 원장의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에서도 혁신당을 독자적인 판단과 목소리를 가진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다”고 했다.
양당의 시각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장 관계를 봉합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현시점에서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인위적인 액션을 취하기보다는 공개 석상에서 날 선 발언을 자제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며 “조 원장이 강경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한동안 두 당의 냉랭한 분위기는 지속될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혁신당이 제기하는 신뢰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조국혁신당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양당 합당 논의가 나왔을 때 혁신당이 상처를 받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를 치유하거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혁신당에서도 민주당의 선제적인 관계 회복 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혁신당 핵심 관계자는 “지방선거 전 합당 논의 당시 반대파로 분류됐던 김민석 대표가 사과 등 제대로 된 입장을 밝혀야 연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당의 갈등을 합당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과 협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했다.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자강’을 강조하는 혁신당의 행보에는 합당 과정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며 “민주당과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공간이 열렸다고 판단해 압박 수위를 높이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민주당의 강한 대응 역시 혁신당 자체뿐 아니라 장외에서 합당론을 밀며 여론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같은 충돌이 이어질수록 합당은 더 멀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철준 기자 cj5121@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