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은 지난 1월 29일 투자자들에게 발송한 자료에서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엔화약세, 실적부진으로 단기 급락한 종목 저가매수, 환율변동에 중립적인 기업 매수 등을 대응책으로 추천했다. 이 회사 이남룡 연구원은 “주가하락의 요인들이 모두 9부 능선을 넘어 해결국면에 다가갔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코스피지수의 추가하락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증권과 업계 수위를 다투는 대우증권도 이튿날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Discount, 할인)를 가져왔던 원화강세와 엔화약세, 주택가격 하락 부진 등의 요인 가운데 엔화약세를 제외한 다른 악재들은 개선될 여지가 크다면서 2월 증시 반등을 점쳤다.
아이러니하게 삼성증권 추천종목은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 포스코, SK하이닉스, LG전자, 삼성전기, 현대위아 등 낙폭과대주다. 반면 대우증권 추천종목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SK이노베이션, 하나금융지주, 현대제철, 삼성증권, 대림산업 등으로 전혀 다르다. 시장 전망과 종목 추천은 각 증권사의 고유 권한인 만큼 왈가왈부하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의 전망이 장밋빛에 쏠리고, 전망이 어긋난 적도 워낙 많다 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당장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지난 연말부터 줄곧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증권사들 역시 장밋빛 전망만큼 주식을 사들이고 있지는 않다. 지난해 12월 이후 올 1월까지 두 달간 투신권은 1조 1000억 원 넘게 내다팔았지만, 증권사들은 그 절반인 5700억 원을 사들였을 뿐이다. 올 1월만 놓고 봐도 투신은 3100억 원을 팔아치웠고, 증권사는 고작 914억 원을 순매수했다. 그럼에도 지난 12월 3조 3000억 원을 순매도했던 개인은 1월 1조 1261억 원이나 사들였다. 지난해 12월 코스피는 8% 넘게 올랐고, 올 1월에는 5% 가까이 내렸다. 이쯤 되면 증권사들과 이와 연결된 일각의 장밋빛 전망이 개인 자금을 빨아들였다는 해석도 할 만하다.
그런데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의 논리도 그리 꼼꼼하지는 못하다. 예를 들어 낙폭과대 수출주의 반등 전망은 단지 주가가 많이 빠졌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하지만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익전망이 하향되는 추세에서는 주가의 수준 자체가 재조정되므로 논리적 설득력이 약해진다.
가장 좋은 예가 자동차 주식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원화강세의 충격과, 엔약세로 무장한 일본의 반격’을 이유로 중립(홀드, Hold) 전략을 권한다. 반면 다른 일부는 ‘품질 경쟁력을 감안하고, 그동안의 낙폭을 고려할 때 저가매수 기회’라며 매수(바이, Buy) 전략을 추천한다. 그런데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의 분기별 영업이익률은 누가 봐도 확실한 하향추세의 초기 국면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낙폭과대로도 볼 수 있지만, 미래 이익전망 기준으로 보면 현재 주가에도 여전히 군살이 많이 남아있다고도 풀이할 수도 있다.
시중의 돈이 갈 데가 없다는 주장도 장밋빛 전망의 근거 가운데 하나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는 홍성국 센터장의 주장이 대표적인데, 저금리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강화로 은행에서 빠져나온 돈이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주고, 세금 부담도 없는 증시로 올 것이란 설명이다.
그런데 증시 투자예비자금으로 불리는 고객예탁금은 석 달째 17조~18조 원의 박스권에 묶여있다. 자금이동이 일어난다면 이곳에 돈이 몰려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주식과 함께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형 펀드에서도 돈은 계속 빠지고 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형 펀드에는 계속 돈이 몰리고 있다. 물론 앞으로 고객예탁금이나 주식형 펀드에 돈이 몰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같은 조짐을 보여주는 숫자는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강력한 대책이 나와 증시에 도움을 줄 것이란 논리도 최근 부쩍 늘었다. 그런데 김용준 총리 후보자 사퇴로 다음 정부의 내각 구성이 상당기간 지연될 것이란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내각 구성이 늦어지면 새 장관과 각 부처 간부들이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일정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대책이 나오더라도 그 시기는 1분기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2월 25일 대통령 취임을 새 정책이 발표되고 실행되는 시점으로 본다는 건 어불성설인 셈이다.
익명의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주식은 실적과 유동성의 함수인데, 요즘처럼 실적 전망이 어둡고 유동성의 향배를 점치기 어려운 때는 방어적인 자세로 손실을 보지 않는 게 프로 세계에서는 정석”이라며 “증권사들의 경우 주식 거래를 일으키거나, 금융상품 계좌를 개설해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보니 다소 무리하게 투자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최열희 언론인
총수 구속 그룹 주가 영향은?
‘회장님 리스크’ 영향 미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이어 최태원 SK(주) 회장도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하지만 최 회장의 수감이 SK그룹에 미칠 영향은 별로 없을 전망이다. SK그룹의 포트폴리오상 ‘가만히 놔둬도’ 굴러가는 사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월 31일 최 회장이 법원에서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을 때 SK그룹주는 지주사인 SK(주)만 2% 넘게 하락했을 뿐, 나머지 주력 계열사들은 증시 전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루 뒤인 2월 1일 주력계열사 가운데 SK이노베이션과 SKC, SK케미칼 주가가 급락했지만 다른 화학주와 제약주도 급락했다는 점에서 최 회장의 수감보다는 업황에 따른 주가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날 SK텔레콤 주식은 오히려 1% 넘게 오르기도 했다.
특히 이동통신 시장과 정유 및 주유소 시장에서 확고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이나 SK텔레콤은 별다른 투자나 사업전략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최 회장의 의사결정이 별로 필요 없는 곳이다.
SK C&C 등 다른 계열사들도 이미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고 예측한 최 회장이 수감 전 각 사별로 독립경영 체제를 갖춰놓은 데 따라 별다른 경영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SK하이닉스의 경우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지배구조상 최종결정권자인 최 회장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못 내린다면 경영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최 회장 본인도 반도체 사업경험이 일천해 대부분 참모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만큼 옥중경영도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수감 당일 SK하이닉스 주가는 되레 올랐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우리나라 재벌그룹도 이젠 꽤 시스템 경영이 이뤄져 있어 회장이 자리에 없다고 경영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할 여지는 많이 줄었다”면서 “오너 회장의 역할은 직접 경영을 한다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이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전문경영인의 월권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 수감 후 경영차질을 우려했지만, 실제 그리 큰 경영공백은 없는 것 같다”면서 “한화그룹의 주력은 한화생명보험과 한화케미칼인데 생명보험은 네트워크 사업이라 회장의 개입이 그리 필요 없고, 한화케미칼도 김 회장의 장남이 경영일선에 있는 만큼 경영감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 증권사 임원도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던 재벌들은 특히 감옥을 싫어하는데, 가봤던 사람들이 더 싫어하더라”면서 “회장 없으면 경영차질이 빚어진다고 하지만 대부분 엄살인 경우가 많아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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