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새벽 역삼동 인근 노래방 앞. 여성 고객의 콜을 받고 달려온 남성 도우미들의 모습이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논현역 다 왔는데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남의 유명 노래방 도우미 업체에 면접 약속을 잡아 놓은 기자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이 업체 실장 A 씨(30)에게 전화를 걸었다. A 씨가 알려준 출구로 나오니 검은색 스타렉스 한 대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A 씨는 차에 타라고 기자에게 손짓했다.
면접은 운전석 옆자리에서 이뤄졌다. 차 내부 전등을 켠 A 씨는 기자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더니 대뜸 “조금 간당간당하겠는데”라고 말했다. 면접의 기준은 한마디로 ‘사이즈’였다. 사이즈란 외모, 키, 스타일 등을 통칭하는 이 바닥의 용어다. A 씨는 “강남에서 일하기 때문에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애들이 정말 많다. 최근에 80명 정도가 면접을 봤는데 몇 명 빼놓고는 모두 떨어트렸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다”라고 말했다.
경력, 지원동기 등과 관련해 A 씨는 기자와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다른 실장에게 또 면접을 봐야 한다. 상의를 해 최종 결정을 하니 뒷좌석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기자가 뒷좌석에 가 있는 동안 몇 명의 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모두 20대 초·중반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현재 나이를 스물네 살이라고 밝힌 한 지원자는 가수 지망생이며 소속사가 어디인지를 말하기도 했다. A 씨는 “하루에 보통 8명 정도가 면접을 보러 오는 것 같다. 대부분 20대로, 연예계 지망생, 피팅모델, 대학생들이 수두룩하다”라고 전했다.
오후 11시 30분. A 씨는 차를 끌고 남성 노래방 도우미들이 모이는 장소로 기자를 데려갔다. 거기서 만난 노래방 도우미들은 대략 15명. 이 15명을 A 씨는 ‘박스’라고 불렀다. ‘박스’는 실장을 중심으로 함께 가게에 투입되는 일종의 팀이다. A 씨는 “강남 일대에만 ‘박스’가 22개 정도 된다”고 귀띔했다. ‘박스’ 하나에 선수 15명이 있다고 환산하면 대략 300여 명의 노래방 도우미들이 강남에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 노래방 복도에서 룸 입장 대기 중인 남자 도우미들. 여성전용 클럽, 노래방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찾는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
모임 장소에서 대기하던 중 또 다른 실장 B 씨(29)가 기자에게 다가왔다. 기자의 키와 얼굴을 체크하던 그는 “근처에 단골 미용실이 있으니 다녀오라”고 기자에게 주문했다. 다른 노래방 도우미들은 모두 출근 전 미용실에서 꽃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기자가 “미용실은 내일 가도 되느냐”고 되묻자, B 씨는 “미용실에 가면 비비크림도 발라주고 풀세팅을 해준다. 초이스는 그날 머리스타일에 따라 좌지우지되니 머리를 안 한 오늘은 너무 기대하지 말라”면서 “일단 지금은 일을 배우는 형식으로 시작하자”고 전했다. 다행히(?) 면접은 통과한 셈이다.
잠시 후 노래방 도우미들이 필요하다는 유흥업소의 ‘콜’이 떨어지자, 스타렉스가 업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A 씨에 따르면 이 업체는 강남 일대의 여성전용클럽, 노래방, 가라오케 등에 노래방 도우미들을 공급한다고 한다. A 씨는 빠른 목소리로 “18번을 정해라. 이런 노래는 절대 부르지 마라. 대화가 끊기면 안 된다. 초이스 되면 시간체크 확실히 하고 끝나면 연락해라” 등의 지시사항을 내렸다.
업소에 도착한 실장이 짧은 소리로 “24T!”라고 외치자 ‘선수’들이 해당 룸 문 앞에 섰다. 실장이 먼저 들어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노래방 도우미들이 룸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룸이 넓지 않은 관계로 보통 3명씩 입장을 했다. 먼저 등장한 순서대로 1조, 2조가 나뉜다. 기자는 1조 2번으로 룸에 입장했다.
“자 애들 소개할게요”라고 실장이 말하자 차례대로 “◦◦에요”라고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기자도 튀지 않는 목소리로 이를 따라했다. 자리에 앉은 여성 손님들이 “얼굴을 다 봤다”고 얘기할 때까지 그대로 정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첫 번째 초이스는 2조 3번에게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노래방 도우미들은 스타렉스에 실린 채 여자들이 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입됐다. 다소 구석진 노래주점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초이스를 받아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손님이 노래방 도우미를 초이스하면 1시간에 3만 5000원을 지불한다. 이 중 1만 원은 실장에게, 2만 5000원은 노래방 도우미에게 돌아간다. 시간은 얼마든지 연장 가능해 오래 자리를 끌수록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9시까지의 근무 시간 중 잘 나가는 노래방 도우미들은 보통 4~5번의 초이스를 받지만, 아예 초이스를 받지 못하는 노래방 도우미도 있다.
4년 정도 이 생활을 했다는 C 씨(24)와 기자가 초이스 완패의 주인공이었다. 업소를 20여 군데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초이스가 되지 않은 것. 반면 나머지 인원은 모두 1번 이상은 초이스를 받은 상태였다. A 씨는 “처음 와서 초이스를 받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내가 아는 사람도 첫날에는 공쳤는데 둘째 날부터 20만 원씩 벌더라”며 기자를 위로했다.
한편 새벽 3시가 넘어가자 초이스를 받았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취해 차량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스타렉스 안에는 묘한 향수냄새와 술 냄새가 공존했다. 선수들의 화젯거리는 “누가 누가 진상이더라”, “팁은 얼마 받느냐”, “손님 중 누구 얼굴이 괜찮더라” 등이었다.
초이스 되지 못한 선수들은 휴대폰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무료한 대기 시간을 달랬다.
동이 틀 무렵이 되자 노래방 도우미들의 얼굴에도 피곤함이 가득했다. 오전 8시쯤 마지막 초이스를 끝내고 노래방 도우미들은 집에 가는 차에 올라탔다. A 씨는 “손님들이 시간을 끌 경우 오후 12시까지 일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단속 사각지대 관련 법 없는데 걸릴 턱이 있나 최근 강남 일대에 여성 전용 노래방에서 고용한 40~50대 중년 여성들이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를 배회하며 남자 대학생들에게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제안해 논란이 일었다. 이와 더불어 남성 노래방 도우미는 여러 불법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선 현행 법규에선 남성 유흥종사자를 규정한 법규가 없기 때문에 남성 노래방 도우미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래방 도우미 활동을 하며 2차에서 성관계까지 맺을 경우 엄연히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노래방 활동만으로는 처벌할 규정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또 ‘2차’의 경우도 성매매를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처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남성 노래방 도우미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남성 노래방 도우미 현황이나 보도방을 파악하기도, 단속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만큼 음성적으로 퍼져 있다”고 밝혔다. 한편 남성 노래방 도우미가 불법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소득이 있는데 세금을 안내니 불법이 맞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적발하려면 돈을 주고받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데 절대 걸릴 리가 없다”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2차 부담 NO! 놀면서 돈 번다” 20대 남성들, 노래방 도우미로 몰리는 까닭 20여 곳의 업소를 돌아다니면서 기자는 업소로 몰리는 노래방 도우미들의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 업소에 세 개의 ‘박스’가 한꺼번에 투입돼 수십 명의 노래방 도우미들이 초이스를 기다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유흥업소 관계자는 “노래방 도우미가 그나마 돈 벌기가 수월하고 호스트바보다는 더러운 꼴을 안보기 때문에 20대가 몰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호스트바는 술을 강요당하고 2차를 가야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만, 노래방 도우미는 ‘그냥 잘 놀아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는 것. A 씨는 “선수는 오히려 술이 안 취하는 게 중요하다.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2차는 선수가 재량껏 알아서 거부하든지 한다”라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노래방 도우미들은 대부분 수입에 만족하고 있었다. 초이스가 안정궤도에 오르면 한 달에 보통 200만 원에서 600만 원의 수입이 들어온다는 것. 어떤 선수는 손님에게 1억 원을 통째로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번 만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도박이나 성형비용, 유흥비 등으로 번 돈을 탕진하는 것이다. 특히 얼굴을 어떻게 성형하는가는 대기하는 선수들에게 주요 대화거리였다. 한 노래방 도우미는 “성형수술은 돈을 벌면 거의 한 번씩은 한다. 개인 단골 병원이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여성전용 노래방 고객층 때론 게이들이 콜해 ‘뜨악~’ 기자가 체험한 강남 일대의 여성 전용 노래방 및 클럽의 경우 20~30대의 젊은 층의 여성 손님들이 많았다. 강남에서 일하는 한 남성 노래방 도우미는 “젊고 외모가 예쁜 층의 여성 손님들이 많은 것이 강남의 특징”이라며 “가끔 트랜스젠더나 게이들이 도우미들을 부르기도 해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강남 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여성 전용 노래방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다소 높은 편이다.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강남을 벗어나 강북 지역이나 부평, 인천 지역에는 40대 아주머니들이 여성 전용 노래방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