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당장 올해부터 시행된 금융소득종합과세 적용기준 완화는 그 신호탄일 뿐, 외환거래세와 채권거래세, 그리고 뒤이어 주식양도차익과세 등이 연이어 시행되며 사실상 증시를 초토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금융투자 관련 과세제도는 금융거래를 급격히 위축시켜 금융시장에 치명타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금융소득종합 과세 기준 완화에 대해서는 그래도 낙관적인 관측이 많았다. 은행에 머물던 이자수익 자금이 과세가 되지 않는 증시로 이동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외환거래세와 채권거래세의 경우 반응이 전혀 다르다. 가장 임박한 것은 외환거래세인데, 외국인들의 원화 환전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게 내용이다. 문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및 채권 투자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은 환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자금이라는 데 있다. 만약 환전 단계에서 환차익 부분이 줄어든다면 국내에 유입되는 외국인 주식 및 채권투자 자금이 감소하거나, 제도 변경 전 국내로 들어온 외화가 급히 유출될 수 있다.
아울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자본자유화규제협약을 통해 나라간 자본의 이동을 억제하는 차별적인 규제를 금지하고 있다. 먼저 외환거래세를 도입한 브라질은 OECD 회원국이 아니라 적용되지 않았지만,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다르다. 외국인에만 외환거래세를 부과한다면 OECD 협약 위반이 된다. 따라서 외환거래세를 도입하려면 내국인에도 부과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국인에도 외환거래세를 부과하면 달러와 원화 환전이 수시로 필요한 수출입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진다.
그래도 그나마 외환거래세는 낫다. 세금이 부과되는 역내시장을 피해 역외시장(용어설명 참조)에서 거래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권거래세는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에게도 동시에 적용되는 데다, 역외시장처럼 회피할 방법도 없다. 특히 채권은 다른 파생금융상품 등 거의 모든 금융상품의 기초가 되므로 연쇄효과도 엄청나다. 익명의 채권 매니저는 “금융시장의 가장 근간이 금리시장인데, 채권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면 거래를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라면서 “사실상 금융시장을 식물 상태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라며 격분했다.
JP모건의 분석을 보면 채권거래세가 0.5% 부과되면 연간 4000억 원의 세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대신 세금 부과로 채권거래는 현재의 반토막으로 줄어들 것이란 것 역시 JP모건의 예측이다. 한 증권사 채권영업팀 관계자는 “금융의 기본 기능인 자금모집과 대여기능이 채권거래를 통해 이뤄지는데, 채권거래세를 도입한 다른 국가의 사례를 보면 도입 이후 거래규모가 급감했다”면서 “0.05%의 수익이라도 좇는 게 채권거래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시장을 죽인 대가로 복지를 하자는 셈”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주식양도차익 과세제도도 당장은 수면 아래 있지만, 대선 전 여권을 중심으로 심도 깊게 논의된 만큼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재의 주식양도 차익과세 기준을 낮춰 세금부과 대상을 늘리겠다는 내용인데, 이 역시도 증시에는 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증시가 빠른 반등에 성공했던 것은 랩어카운트 등을 통해 고액자산가들의 뭉칫돈이 증시로 유입된 덕분”이라면서 “그런데 주식양도차익 과세가 강화되면 그나마 증시로 향하던 뭉칫돈이 각종 규제완화가 예상되는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여의도 증권가의 반감도 점차 고조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실적 악화 등으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의 대규모 감원과, 투자자문사 퇴출 소문이 흉흉하다 보니 반감의 강도도 상당히 높다.
한 증권사 고위임원은 “1970년대식 개발경제, 제조업과 무역중심의 성장모델 등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정책 윤곽을 보면 과연 21세기의 지도자인지 의심케 한다”고 꼬집었다.
최열희 언론인
Tip 역외시장이란? 자유롭게 자금을 운용하고 조달할 수 있는 금융시장으로 국내의 예금금리의 규제나 이자배당에 대한 원천과세제도 등으로부터 분리돼 있다. 런던, 미국, 홍콩, 싱가포르, 바레인, 룩셈부르크에 있다. |
‘채권거래세’ 은행·보험 조용한 이유 “고객에 떠넘기면 그만” 채권거래세 도입에는 금융권 가운데서도 유독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의 반발이 심하다. 채권거래는 이들 외에도 은행이나 보험사들도 하는데 왜 이들은 비교적 조용할까. 다 이유가 있다. 은행은 거래세가 부과되더라도 이를 예금자나 대출자에게 떠넘길 수 있다. 즉 거래세만큼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금리를 줄이고, 대출자에게 받는 이자를 높이는 방법이다. 이와 함께 은행은 최고경영진 인사권까지 사실상 정치권과 정부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정부의 방침에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인 셈이다. 보험사의 경우에는 거래보다는 만기보유를 많이 하는 게 이유다. 보험사들은 매년 예상되는 자금수요에 맞춰 애초에 발행채권을 매입할 때부터 보유채권의 만기를 조절한다. 그러다 보니 거래세에 따른 부담도 그만큼 적다. 또 보험사들 역시 보험계약 조건을 통해 거래세에 따른 부담을 보험계약자에게 떠넘길 수도 있다. 그럼 증권사는 왜 다를까. 증권사들은 채권거래 차익 자체가 회사의 중요한 수익원이다. 증권사들은 은행이나 보험처럼 거래고객들에게 거래비용을 떠넘길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게다가 증권시장은 60여 회사가 난립해 있어 다른 서비스 수수료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자산운용사도 마찬가지다. 완전경쟁시장이라 투자자들에게 받는 수수료를 높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채권의 경우 은행이나 보험사들이 최대 고객인데, 거래세가 부과되면 이들 큰손 고객들은 수익이 줄어드는 만큼 운용보수를 깎으려 들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거래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