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한화그룹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정규직 전환 직원들과 함께 지난 4일 떡국떡 썰기, 만두 빚기 등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인기 만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말 그대로 ‘미생’이다. 정규직을 꿈꾸기도 어려운 고졸 비정규직인 까닭에서다. <미생>의 인기만큼이나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어떤 경제·노동 전문가는 ‘비정규직 양산→구매력의 지속적 약화→내수 침체 심화→불황 장기화’의 악순환을 이유로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전쟁 이후 최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상황에 최근 한화그룹의 대규모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한화그룹은 오는 3월 1일부로 비정규직 직원 2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한다고 지난 1월 27일 밝혔다. 국내 10대 그룹에서는 처음이다. 아울러 향후에도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동일한 직무에 대해서는 정규직으로 채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직무에 종사하는 계약직 직원이다. 이를 위한 비용은 연간 20억여 원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정규직 전환 대상 직원은 계열사별로, 한화호텔&리조트가 725명, 한화손해보험 533명, 한화63시티 209명, 한화갤러리아 166명 등 총 2043명. 직무별로는 서비스 564명, 고객상담사 500명, 사무지원 224명, 사무관리 205명, 직영시설관리 197명, 판매사원 153명 등이다. 계약직으로 채용해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인력도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이번 정규직 전환을 통해 그룹 전체 임직원의 비정규직 비율이 10.4%로 내려가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인 33.8%(2012년 8월 기준)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와 비교된다. 특히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자 2043명 중 여성이 1200여 명으로 전체 60%를 차지해 회사 내 여성 인력의 고용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장일형 경영기획실 사장은 “이번 정규직 전환은 한화그룹의 정신인 ‘신용과 의리’, ‘함께 멀리’라는 가치를 적극 실천하는 것으로 지난해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경제적,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고용안정을 통한 동기부여와 소속감 상승으로 직원들의 로열티를 끌어올리고 회사는 서비스직군의 잦은 이직을 사전에 방지해 고객에 대한 차원 높은 서비스 제공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 회사, 고객이 ‘윈-윈-윈’하는 길인 셈이다.
한화의 이러한 행보는 적잖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발표 이후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특히 2011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 영향 때문인지 공공부문 쪽의 문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이번 정규직화 조치는 일단 매우 긍정적”이라며 “서울시에 이어 한화그룹까지, 이러한 정규직 전환의 사례는 전체 사회로 더욱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산하의 한 산별노조 위원장도 “배경이야 어찌됐건 훌륭한 결정이며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