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열린 경제분야 인수위원회의. 인수위가 추경안과 관련 애매한 모습을 보이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부 여당 중 추경 필요성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곳은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 기간에는 추경 편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대비 1.5%에 그쳤다. 일자리와 복지예산으로 20조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면서 “새누리당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제가 대통령이 돼 추경을 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2013년 예산안을 심의하기도 전에 추경을 주장하는 것은 선심성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그랬던 새누리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공약 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안을 내놓는 등 입장을 백팔십도 바꿨다. 적자 국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최근에는 선심성 공약이라고 비판했던 추경 편성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추경을 할 수밖에 없다.
경제를 띄워줘야 세수가 더 들어온다”며 추경 필요성을 거론했고,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역시 추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추경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었던 재정부 내에서도 최근 추경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원칙은 한번 무너지면 바로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끝까지 지켜야한다”며 재정건전성에 부담을 가져올 추경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재정부 분위기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어느 곳도 최근 추경을 편성한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나름 건실한 성장률을 보여 온 우리나라가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재정부 내에서 추경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는 연간 27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만으로는 이를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취득세 감면 연장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분까지 중앙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재원 마련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 역시 추경 편성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재정부는 그러나 인수위에 추경안을 명확하게 보고하지는 않고 있어 인수위를 상대로 심리전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가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높이면 재정부는 추경 불가피성을 흘리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추경에 대한 인수위의 입장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추경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명확히 선을 그어줘야 할 인수위가 새 정부 출범 이후 논의한다는 식의 애매한 모습을 보이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인수위가 추경 편성 필요성을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인수위에서 추경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혼란에도 인수위 관계자들은 추경안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특히 인수위가 박근혜 당선인 지시에 따라 보안을 강화하면서 오히려 혼란이 정리되지 않는 분위기다. 또 박근혜 당선인 속뜻을 아는 이가 인수위에 없다는 점도 추경 혼선 교통정리를 막고 있다.
이에 정치권과 경제계 일부 인사들은 추경을 할 경우 박근혜 당선인의 정치적 부담이 높아지고, 추경을 하지 않을 때는 경제적 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에 인수위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국가재정법에는 추경 편성을 위한 조건들이 명확하게 명시(89조)되어 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하여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이다.
그런데 현재 여건 중 추경 편성 조건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경기침체를 이유로 들자니 새로 들어선 정부가 경제정책을 펴보지도 않고 침체라고 선언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경기침체라면 성장률이 하락해야 하는데 한국 경제가 비록 주춤하고는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하락세는 아니다. 국가 지출 필요성 발생이 그나마 명분이 되는데 이를 적용하자니 대선 기간에 이야기했던 재원 마련 방안이 ‘허언’이었다고 공언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추경을 하지 않으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추경 편성은 그만큼 경제 사정이 긴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추경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이 새 지도체제를 갖추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한국은 정권 출범과 동시에 백기를 드는 것과 같다”면서 “공약을 지키자니 돈은 필요하고, 자금 마련을 위해 추경을 하자니 모양새가 우스워지는 상황이다. 때문에 인수위가 결정을 못 내리고 갈팡질팡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
외교부 vs 지경부 ‘통상’ 놓고 신경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외교통상부에서 통상을 분리해 지식경제부로 이관, 산업통상자원부로 통합 변경키로 결정한 것에 대해 외교통상부의 반발이 거셌다. 현직 장관이 나서서 헌법을 흔들 소지가 있다고 반박하는가 하면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지낸 현직 여당 의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반면 15년 만에 통상 분야를 다시 가져오는 지식경제부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통상 이관 필요성을 주장할 시기를 저울질하는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외교부가 이처럼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치열한 싸움 끝에 통상을 외교부로 가져온 점과 외교통상부가 된 이후부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시작됐다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있다. 통상을 가져온 뒤에 외교통상부는 산업자원부에서 ‘통상(Trade)’이 들어간 국이나 과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청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이에 비해 지식경제부는 그동안 조용한 분위기였다. 통상을 가져오는 것으로 결정이 난 마당에 외교통상부가 벌이는 싸움에 말려들어 논란을 키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대통령 당선인의 뜻이 결정된 만큼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통상이 지식경제부와 합쳐지는 것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지고, 보호무역주의를 일으킨다는 오해를 사며, 헌법 골간을 흔든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로 합쳐질 때 생기는 유리한 점에 대해서 알릴 시기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겸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