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선친의 사가 ‘부암장’. (아래 왼쪽부터) 장남 조양호 회장, 차남 조남호 회장, 4남 조정호 회장 | ||
최근 한진가(家) 2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은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정석기업을 상대로 선친 사가(私家)인 ‘부암장’ 지분 분할과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부암장은 조중훈 한진 창업회장이 기거하던 곳으로 한진그룹에겐 삼성그룹의 승지원과 비슷한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조남호 회장 측은 “선대 회장 별세 이후 부암장 터에 창업주 기념관을 짓기로 약속했는데 건립이 지연돼 정신적 고통이 크다”며 “조양호 회장이 부암장 터를 사유재산화하려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계열분리 당시 조양호 회장이 기념관 건립을 약속해 부암장을 조양호 회장 계열인 정석기업에 넘겼는데 5년이 넘도록 이행되지 않아 결국 법정분쟁을 일으키게 됐다는 것이다.
조남호-조정호 형제는 조양호 회장과 정석기업을 상대로 각각 정신적 피해보상액 1억 원씩과 부암장 지분 6.5분의 2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부암장에 대한 조중훈 창업회장 아들 4형제와 딸 1명의 지분을 각각 6.5분의 1씩으로, 모친 지분을 6.5분의 1.5로 산정해서 조남호-조정호 형제의 몫을 내놓으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진 측은 “기념관은 당초 상호 협의를 통해 건립하기로 하고 준비 중에 있으나 그동안 상대방(조남호 조정호 형제)이 계속 다른 문제를 제기해서 큰 진척이 없었을 뿐 기념관을 건립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해 유감”이라 밝혔다. ‘다른 문제 제기’란 정석기업 차명주식 증여 소송과 대한항공 면세품 납품업체인 브릭트레이딩 관련 소송을 뜻한다.
지난 2005년 조남호 조정호 형제는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한진그룹 지주회사 격인 정석기업 지분 중 친인척 명의로 돼 있는 7만여 주가 원래 자신들의 몫이라며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엔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이 총수 일가 4형제 공동소유인 브릭트레이딩의 면세품 공급권을 조양호 회장 계열인 삼희무역에 넘기자 조남호 조정호 형제가 이에 대한 반발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었다.
연이은 소송 배경에 대해 한진중공업 측은 “선친 재산분배 과정에서 비롯된 갈등이 커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중훈 회장이 작고하기 전 조양호 회장 측 인사들만 참석한 채 유언장이 작성돼 지주회사인 정석기업을 비롯해 알짜인 ㈜한진 대한항공 한국공항 등이 모두 조양호 회장 차지가 됐다는 주장이다. 조중훈 회장 사후 2남인 고 조수호 회장은 한진해운, 3남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 4남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을 각각 맡아왔다.
한진중공업과 메리츠금융은 한진으로부터 계열분리가 끝난 상태며 한진해운은 한진 계열로 남아있다.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2005년 정석기업 관련 소송 당시 조양호 회장 편에 섰다.
이에 대해 한진 측은 “조남호 조정호 형제가 조중훈 회장 유언 내용에 대한 법적 동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산분배 과정에 하자가 없다며 계속되는 형제들의 소송 제기 배경에 다른 의도가 깔려있다는 입장이다. 조양호 회장을 도덕적으로 모함해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남호 회장 측은 돈을 떠나 ‘소송 제기 자체가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맏형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소송을 통해 알리겠다는 태세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을 겪은 재계 인사들은 한진 형제들의 법적 다툼이 결국 금전적 이익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석기업은 한진의 지주회사라는 점에서 지분 확보가 곧 경영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지분 갈등이 법정다툼으로 연결된 것이며 막대한 이윤이 걸린 대한항공 면세품 납품 건 역시 형제들이 등을 돌리기에 충분한 사유가 됐다는 평이다.
반면 앞선 사례들에 비해 부암장 소송은 큰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 아니란 점에서 공개되지 않은 다른 배경이 깔려있을 가능성에 업계 인사들이 주목하기도 한다. 피해보상 1억 원을 두고 재벌가 형제들이 법정다툼을 벌일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이 뒤를 따른다.
일각에선 부암장 소송이 해당 부지 일대 개발계획과 관련 있다고 보기도 한다. 지난 2004년 부암동 일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서 해제되면서 이곳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지구단위 계획이 시작돼 토지 가치가 오르고 있다고 한다. 조양호 회장이 부암장에 대한 기념관 건립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나 조남호 조정호 형제가 이를 빼앗으려는 배경에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하지만 양측 모두 부인한다.
한편 일각에선 한진 계열사 중 한 곳의 외국자본 명의 지분이 차명으로 관리돼 온 한진 총수일가의 재산이란 이야기가 퍼져 있다. 이는 해당 계열사 지배권 향배를 가를 수 있는 지분율이다. 미확인 소문이지만 악화된 형제들 간의 관계를 감안하면 새 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