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예선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김태균이 2점포를 쏘는 모습. 한국은 예선에선 일본을 꺾었지만 결승에선 일본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연합뉴스
# 변방에서 세계 중심으로…
한국은 2006년에 열린 WBC 1회 대회에서 4강까지 올랐다. 애초 한국은 4강 후보가 아니었다. 미국 야구전문가들은 한국 야구를 가리켜 “마이너리그 더블A와 트리플A 사이의 실력”이라 평했다. 일부에선 “일본, 타이완을 제치고 본선리그에 진출하는 것도 역부족”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은 당시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 타이완을 꺾으며 본선진출 티켓을 따냈다. 본선에 진출해선 유명 메이저리거가 버틴 미국 대표팀을 가볍게 눌렀다. 한국이 4강에 진출하자 미국야구계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녀석들이야?(Who are these guys, anyway?)’라며 크게 놀랐다.
물론 이때만 해도 한국의 4강 진출은 행운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회 대회에서 세계야구계는 ‘행운도 조건이 갖춰져야 성립한다’는 걸 한국을 통해 배웠다. 한국은 최정예 멤버들로 대표팀을 구성하고서 오랜 합숙훈련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결과는 좋았다. 1회 대회 때처럼 한국은 일본,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야구강국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까지 올랐다. 평균 연봉 1000만 달러를 넘는 세계 최고의 타자들은 한국 투수들이 등판만 하면 마치 총을 들이대기도 전에 알아서 지갑을 여는 이들처럼 헛스윙을 남발했고, 한국 타자들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시속 150㎞ 강속구를 가벼운 스윙으로 받아쳐 담장 밖으로 넘겼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접전을 펼치다 아쉽게 지긴 했지만, 한국야구는 두 번의 WBC를 통해 세계야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오는 3월 2일부터 열리는 3회 WBC에서 한국은 대회 첫 우승을 노린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1회 대회에서 4강,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니 3회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당연하다”며 “대표팀 전력만 보면 우승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류 감독의 공언과 달리 야구전문가들은 “1, 2회 대회 때보다 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며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지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예선 일본과의 경기에서 김현수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역대 최약체 드림팀이다.” 한 야구인은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경기에 믿고 내보낼 만한 투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누가 봐도 이번 대표팀 마운드 높이는 예전 같지 않다. 역대 한국 대표팀은 막강한 투수진을 바탕으로 야구강호들을 제압했다. 그 중심엔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같은 특급 좌완투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엔 이 투수들이 모두 빠졌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서재응 윤석민 노경은 송승준 윤희상 등 우완 선발투수들과 오승환 유원상 손승락 정대현 등 우완 불펜투수들의 구성은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좌완 선발이 장원삼 장원준뿐이고, 좌완 불펜도 차우찬 박희수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며 “과연 장원삼과 장원준이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의 공백을 확실하게 메워줄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타선은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타선만 본다면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정반대다. 이용규와 정근우가 테이블 세터진을 구축하고, 이승엽-이대호-최정이 클린업 트리오를 형성하며, 김현수 이진영 강정호 강민호가 하위타선을 구축한다면 세계 어느 팀과 견줘도 타선의 짜임새와 폭발력은 뒤지지 않는다. 여기다 백업멤버로 김태균 진갑용 김상수 손시헌 전준우 손아섭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용자원도 풍부하다.”
야구계 일각에선 메이저리거 추신수의 불참으로 대표팀 전력이 크게 약해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야구인 대부분은 “태극마크를 다는 것만으로 자긍심을 느끼고, 실력도 뛰어난 국내파 외야수들이 많다”며 따라서 추신수의 공백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역대 최약체’와 ‘해볼 만한 팀’이란 엇갈린 평가 속에서 한국은 3월 2일부터 타이완 타이중에서 열리는 WBC 본선 1라운드에 참가한다. 타이완, 네덜란드, 호주와 1라운드 B조에 속한 한국은 2일 네덜란드와 첫 경기를 갖고 호주, 타이완과 차례로 맞붙는다. 한국은 상위 2위 안에 들면 3월 8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한다.
본선 2라운드에 진출한다면 한국은 1라운드 B조 1, 2위가 예상되는 일본, 쿠바와 2장의 챔피언십 라운드 티켓을 놓고 접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여기서 한국이 상위 2위 안에 든다면 3월 17일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준결승에 나가고, 이 경기 결과에 따라 결승 진출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 야구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을 준결승 진출 유력 팀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매거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의 톰 버두치 기자는 “한국, 일본, 미국, 도미니카가 4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안정된 수비와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한국을 꼽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팀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의 자신감은 높다. 류 감독은 “메이저리거가 대거 빠진 일본,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에게 패했던 쿠바,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약한 타이완을 꺾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대회 사상 첫 우승컵을 손에 쥐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국야구가 3회 WBC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한국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하는 올림픽과 최고의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는 WBC 우승컵을 동시에 거머쥔 사상 최초의 나라가 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네덜란드가 복병 방심했다간 불의의 일격 네덜란드는 2011년 야구월드컵에서 쿠바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출처=IBAF 홈페이지 그는 “쿠바, 중국, 브라질과 1라운드 A조에 속한 일본보다 B조 타이완, 호주, 네덜란드와 한조인 한국이 더 불안할 것 같다”며 “B조엔 다크호스 팀이 많다”고 우려했다. 특히나 그는 “네덜란드를 조심해야 한다”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불의의 일격을 당할 수 있는 팀”이라고 강조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강호다. 2011년 파나마에서 열린 야구월드컵에서 ‘아마 최강’ 쿠바를 두 차례나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두 번의 경기에서 네덜란드가 강타자가 즐비한 쿠바에 내준 점수는 도합 2점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투수력이 강하다. 이번 WBC에 뽑힌 네덜란드 투수들은 대부분 빠른 공보단 정확한 제구가 돋보이는 투수들이다. 야구월드컵 쿠바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베테랑 투수 로비 코르데만스와 2011년 메이저리그에서 13승6패 평균자책 2.96을 기록한 자이르 후리헨스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원투펀치다. 타선도 나쁘지 않다. 중심타선은 경계 1호다. 3번 타자가 예상되는 블라디미르 발렌틴은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뛰는 강타자다. 2011, 2012년 공히 31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센트럴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누구보다 아시아 야구를 잘 아는 타자로, WBC에서 맹활약해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하길 바라고 있다. 4번 타자로 유력한 앤드류 존스는 1998년부터 10년 연속 미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던 선수다. 폭발력 넘치는 타격과 출중한 수비가 강점이다. 지난해 12월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계약하며 아시아 야구에도 눈을 뜬 상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은 얼마나 네덜란드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대표팀 관계자는 “네덜란드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며 “일단 붙어봐야 알 것 같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내놓았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타이완 전력을 물었을 때도 이 대표팀 관계자는 똑같이 대답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은 타이완에 패하며 동메달에 그친 아픈 기억이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