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이 LA 다저스 스프링캠프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한국 취재진이 30여 명이나 몰려 동료 선수들한테 눈치가 보인다고 하소연한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여기 와보니까 류현진 선수의 인기가 실감난다. 메이저리그에 이렇게 많은 한국 기자들이 몰린 건 박찬호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나도 이렇게 많은 기자분들이 오실 거라곤 예상 못했다. 정말 많이 오신 것 같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은 큰데, 다른 선수들한테 방해가 될까봐 신경이 쓰인다. 메이저리그에선 신인 신분인데 카메라들이 나만 쫓아다니니까 살짝 부담되고 선수들한테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솔직히 덜 주목받고, 덜 관심받으면서 시즌을 준비하고 싶다. 클럽하우스에서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마다 기자들이 뒤를 좇으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국에 비해 훈련량이 적은 편이다. 이런 스타일에 적응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아직 야수들이 다 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훈련량은 진짜 적다. 작년에 한화 소속으로 애리조나에서 전지훈련을 치렀다. 그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훈련만 반복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한국식보다는 지금의 이런 스타일이 더 맞는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제대로 집중해서 훈련하는 게 더 큰 효과를 본다고 생각한다.
―훈련량이 적다 보니 개인 훈련의 필요성을 실감할 수도 있을 텐데, 어떤가.
긴장도 안하냐고? 류현진은 고민도 걱정도 많지만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저스 선수들 중 가장 살갑게 대하는 선수가 누구인가.
▲내야수 루이스 크루즈랑 투수 브랜든 리그, 그리고 하비 게라 등이 먼저 말도 걸어주고, 농담도 하면서 친절하게 대한다. 기사를 보니까 잭 그레인키가 내 붉은 머리 색깔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한데 그런 궁금증은 기자한테 묻지 말고 나한테 직접 물어봐주면 좋겠다(웃음).
―현재 다저스에는 류현진 선수를 비롯해 8명의 선발투수 후보가 있다. 전문가들은 LA 다저스가 메이저리그 최강의 선발진을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2011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은 클레이튼 커쇼와 FA신분으로 1억 4700만 달러(약 1594억 원)를 받고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잭 그레인키, 조시 베켓, 크리스 카푸아노 등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선수들이 포진돼 있다. 이런 선수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라커 좌우로 크리스 카푸아노와 조시 베켓이 자리한다. 그런데 긴장하고 부담을 갖는다고 해서 나한테 유리할 게 없다. 오랜만의 이런 선발 경쟁이 오히려 흥미롭기까지 하다. 에이스로서 선발이 당연시됐던 한국과는 달리 커쇼와 그레인키를 제외한 3, 4선발 자리를 놓고 많은 선수들과 경쟁을 벌이는 게 신선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내셔널리그는 투수도 타석에 선다. 그래서인지 오늘 훈련할 때는 타격 연습도 병행했는데 LA 다저스 타격코치가 홈런왕으로 유명한 마크 맥과이어더라. 직접 지도받는 기분이 어떠했나.
▲(활짝 웃으면서) 수염이 멋있어 보였다. TV로만 봤던 선수를 가까이서 직접 보니까 신기하기까지 했다. 맥과이어 코치가 나한테 잘 친다고 하더라. 금방 배울 수 있겠다며 칭찬 많이 해주셨다. 솔직히 내가 타격 훈련에 신경 쓸 여유가 있겠나. 난 던지는 데만 집중할 것이다. 타격은 번트 연습으로 충분하다(웃음).
(지난 2월 초 애리조나 캠프에 합류한 류현진은 본격적인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 휴식일에는 골프장을 향했다. 골프를 치며 여가 시간을 보낸 것. 그래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혹시 타격 훈련에 대비해 골프로 스윙 연습을 한 것이냐’고. 그랬더니 류현진은 웃음을 터트리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반응한다. 여전히 귀여운 ‘류뚱’이다)
다저스 주전포수 A.J 엘리스와 호흡을 맞춰봤다.
▲두 자릿수 승수는 당연히 기록해야 한다. 아마도 부상만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패가 많더라도 평균자책점이 낮다면 괜찮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올해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일본의 후지카와 규지와 함께 류현진 선수를 신인왕 후보로 꼽고 있다. 후지카와 규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나.
▲국제대회 때 일본대표팀 소속 선수로 봤던 게 전부다. 일본 최고의 마무리 선수 아닌가. 잘 던지는 선수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 선수와 함께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일본 선수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난 내 스스로의 페이스대로 공을 던질 것이다. 그 선수와의 경쟁이 나한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추신수 선수와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나는 추신수 ‘형’은 어떤 모습인가.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난 한국에서 프로 경험을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지만 신수 형은 고등학교 졸업 후 마이너리그에서부터 한 단계씩 밟아 여기까지 올라왔다. 나하고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했다는 걸 여기 와서 더 실감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니까 이런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기고 그 위치까지 올라갔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정말 멋진 형이다(웃음).
―요즘 류현진 연관검색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가 ‘담배’다.
▲흡연은 한국에서도 해왔던 일상이다. 그리고 이곳 메이저리그 기자가 쓴 담배 관련 기사는 유머가 담긴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한국 언론에 확대 재생산되면서 마치 내가 담배 피우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것처럼 기사화되더라.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오랫동안 일상으로 몸에 밴 행위를 억지로 참고 견디는 건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일이다. 담배를 끊을 생각은 없다. 흡연이 공 던지는 데 지장을 준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6년간 연봉 총액 3600만 달러(약 390억 원)를 받고 다저스에 입성한 탓인지, 스프링캠프에서의 류현진 선수는 커쇼, 그레인키가 부럽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 얘기도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니 정작 시즌 들어가면 또 무슨 얘기가 구설수에 오를지 궁금할 정도다. 특히 거주지인 LA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한국에서보다 일상생활이 더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응원을 보내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런 부분은 경기장에서만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햄버거를 먹든지, 쌀밥을 먹든지, 그런 소소한 일상이 언론에 노출되면 LA 생활이 그다지 해피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좀 더 조심하고 신경 써서 행동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류현진은 한화 시절 홍보팀으로부터 절대적인 보호를 받았던 부분을 떠올렸다. 기자들도 사적인 부분은 가급적 터치하지 않으며 룰을 지켜줬지만 LA다저스의 선발 경쟁을 벌이는 지금은 류현진만을 위해 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절감했다고 한다)
류현진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대하는 LA 다저스 팬들의 희망이다.
▲척하는 거다(웃음). 나도 사람인데 어찌 고민이 없고, 긴장을 안 할 수 있겠나. 마운드에 올라갈 때 진짜 긴장 많이 한다. 단,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어렸을 때 야구하면서 얼굴 표정 관리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게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최근 LA에 있는 54층 규모의 호텔 내 최고급 콘도를 장만한 사실이 화제가 됐다. 실제 매입가가 185만 달러(약 20억 원)라고 하던데, 일반 주택이 아닌 콘도를 구입한 이유가 뭔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에이전트 형들(태드 여, 전승환 씨 모두 보라스 코러페이션 소속이다)과 오랜 상의 끝에 그 집을 사기로 한 것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콘도가 아닌 주택을 구입했을 것이다. 혼자 살다 보니 안전을 고려했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곳으로 찾다가 그곳을 발견한 것이다. 집을 마련해 놓아서 그런지 한결 마음이 편하다. 캠프 끝나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LA 다저스 하면 박찬호가 연상된다. 대선배의 업적 때문에 앞으로 비교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류현진이 애리조나에 머무는 동안 살고 있는 콘도는 한 달 렌트비만 5000달러다. 이 비용은 구단 측에서 모두 지급해준다고 한다. 방 세 개에다 거실과 부엌이 있는 구조인 이 콘도 내에는 넓은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가 위치해 있다. 본격적인 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하며 몸만들기에 나섰다.
한국과 메이저리그 언론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는 류현진은 인터뷰 말미에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데 기자들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면서 “막상 메이저리그에 들어와 보니까 내가 부딪쳐야 할 부분이 예상 외로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그가 말하는 ‘부딪치는 부분’들 중에는 언론과의 관계도 있는 듯하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