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다룬 영화 <노리개> 예고편 캡처.
영화 <노리개>를 통해 최승호 감독이 지적하고자 한 연예인 성상납과 성매매소재는 이미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다룬 바 있다. 여성 연예인들이 연예계 관계자들이나 고위층에게 성을 대가로 연예계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온 내용은 이미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수많은 루머를 통해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됐다.
지금까지의 영화나 드라마는 여성 연예인이 재벌 회장의 애인이 돼 후광을 받는 등의 설정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돈의 화신>에서도 초반부에 이런 설정이 나온다.
하지만 영화 <노리개>는 다르다. 개념화된 성상납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장자연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 2009년 신인배우 장자연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고인이 남긴 문건에 연예계 성상납의 실체가 담겨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고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그렇지만 이미 문건의 대부분이 폐기됐고 경찰은 그 일부만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사회 고위층 인사들 상당수가 문건에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별다른 수사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아직 영화 개봉이 한두 달가량 남은 상태라 영화 제작사 측은 영화의 자세한 내용을 함구하고 있다. 다만 영화사가 밝힌 대략적인 시놉시스와 인물구도는 장자연 사건과 상당히 유사하다. <노리개>는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법정 드라마다.
제작사 측은 한 신인 여자 연예인을 죽음에 몰아넣은 비극적 사건의 진실을 쫓는 열혈 기자와 신인 검사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라고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된 연예기획사 대표와 언론사 사장, 영화감독, 매니저 등의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인터뷰와 법정 증언을 통해 연예계 성상납 로비 문제와 더 나아가 약자를 향한 거대 권력의 잔혹한 살인행위를 낱낱이 드러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열혈 기자로 등장하는 이장호는 현실 속 이상호 기자와 유사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죽은 신인 여자 연예인이 남긴 다이어리와 이메일은 ‘장자연 문건’을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영화에 언론사주가 결정적 증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법정에 서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실제 장자연 사건에서 거론됐던 한 일간지 사주를 연상케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화만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노리개> 제작사 관계자는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인물 설정을 비슷하게 잡았으며 장자연 재판 기록을 참고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전제한 뒤 “<노리개>는 실화인 장자연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허구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영화 <노리개>는 다양한 논란을 야기하며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26년> 등과 비교되고 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다만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은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인데 반해 <26년>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실화에 26년 뒤 희생자 유가족들이 학살의 주범을 단죄한다는 허구가 더해진 영화다.
반면 <노리개>는 실제 사건인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했을 뿐 100% 픽션이다. 따라서 <노리개>는 비록 그 실체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현실에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연예인 성상납을 고발하기 위한 영화이지 장자연 사건의 실체를 다루고 그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영화는 아니다.
<노리개> 제작사 관계자 역시 “특정적인 부분은 사실과 동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인 것을 법정 기록에 따랐다. 하지만 장자연 문제만 다뤘다기보다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대표한 것이 맞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영화 <노리개>가 장자연 사건을 표면에 내세워 화제몰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리개> 제작사가 크라우드 펀딩(온라인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제작비를 지원받는 것)으로 홍보비를 모금하고 있는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2월 13일부터 사이트 ‘굿펀딩’에서 시작된 <노리개>의 홍보비 크라우드 펀딩은 4일 만에 1000만여 원을 넘기며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영화 <26년>의 ‘제작두레’(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해 제작비 모금)로 유명해진 크라우드 펀딩은 최근 영화계에서 제작비 모금과 동시에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으로 가끔 활용되고 있다.
<노리개> 관계자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홍보비가 예상보다 미치지 못해도 개봉할 예정이다. 홍보비를 모금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영화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서포터즈 등 참여를 유도하려는 이유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홍보비 모금 펀딩으로 본격적인 영화 <노리개>의 홍보가 시작된 셈이다. 다만 장자연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자칫 무리수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너무 ‘장자연’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픽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장자연 사건 관계자들의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이나 고소고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관객들조차 영화를 혼동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자연 영화’로 홍보된 <노리개>가 실제 사건과 많은 부분이 다를 경우 장자연 사건의 스토리를 보고 싶어 티켓을 구입한 관객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