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떡값을 받은 새 정부의 인사 명단을 발표한 가운데 삼성 특검의 1차 연장 수사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1차 연장 수사가 끝나는 4월 8일은 4·9 총선 하루 전날이다. 만약 수사기간이 연장되지 않고 4월 8일 마무리된다면 이튿날 총선 결과로 여론이 떠들썩해 삼성 건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수사기간이 다시 한 번 연장될 경우 정치권이 총선 결과에 따라 서로를 헐뜯는 와중에 삼성 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이 이명박 정부 관료들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발표해 삼성 의혹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충분히 열린 셈이다. 이런 까닭에 삼성이 수사기간 2차 연장의 명분을 희석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삼성 특검 소식은 재계는 물론 정·관계 정보통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삼성그룹 실세들이 줄줄이 특검팀에 소환되면서 조사 내용과 관련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입방아가 끊이지 않는다.
삼성 안팎과 정보통들 소식에 따르면 소환대상 인사들은 철저한 사전연구와 연습을 통해 소환조사에 임한다고 한다. 재계 인사들은 “이재용 전무나 이학수 부회장 같은 고위 인사들은 포토라인에 서기 전 시선처리와 표정, 그리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까지 숙지하고 소환에 임하는 것이 기본”이라 입을 모은다. 소환에 응한 삼성 측 인사들이 ‘차명계좌는 내 것’이라는 식의 한결같은 답변 형태를 보여 특검팀이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 또한 사전준비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소환조사를 마치고 나온 삼성 인사들에겐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특검팀이 어떤 내용을 물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답했는지 등을 상세하게 재검토해 내용을 취합한다는 것이다. 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소환조사를 마치고 나온 삼성 인사들이 삼성 내부에서 조사상황을 재구성해 만든 자체 대화록이 특검팀 소환조사 기록보다 더 정확할 것’이란 우스갯소리마저 나돌 정도다.
몇몇 재계 정보통들은 “삼성 내부에서 소환조사를 겪은 직원들의 내부 진술을 통한 자체 연구결과 특검팀이 확보한 정황이 이건희-이재용 부자를 처벌하기에 부족하다는 잠정적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런 까닭에 특검팀이 1차 수사시한 연장은 했지만 2차 연장을 하기에 근거가 부족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기도 한다.
삼성 입장에서 최대 뇌관은 아무래도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일 것이다. 지난 5일 사제단의 삼성 사태 관련 5차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 고위 관료들에 대한 삼성의 로비 의혹이 터져 나왔다. 김 변호사가 현 정부 인사들 관련 사안을 터뜨릴 것이란 이야기는 관료 인선이 완료된 직후부터 줄곧 돌아다녔지만 김 변호사 주변과 시민단체 등에서 신중하게 저울질해왔다는 후문이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금품 수수 의혹 제기는 자칫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삼성 특검의 칼날이 이명박 정부 인사들을 향할 경우 청와대와 여권이 이를 간과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사제단이 삼성 로비대상으로 현 정부 인사들 이름을 거론한 것은 9일의 조사기간 마감을 앞둔 특검 수사의 고삐를 죄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만약 삼성 측의 증거 인멸이 계속되고 있다면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무혐의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4월 8일로 예정된 1차 연장 수사기간 이후 특검의 2차 연장 명분이 퇴색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특검팀의 로비 의혹에 대한 정황 근거가 약하다’는 소문 발원지가 삼성일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세인들 사이에 뿌리 깊게 각인돼온 ‘관리의 삼성’ 이미지를 바탕으로 ‘설마 삼성이 쉽게 당할까’ ‘삼성 건드리고도 무사할까’란 생각이 점차 확산되게끔 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기도 한다.
오는 3월 27일 이재용 전무가 운영한 회사의 부실을 삼성 계열사들이 떠안았다는 ‘e삼성 사건’ 공소시효가 끝나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경영권 승계 논란을 둘러싼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과 주식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선 앞으로도 논란이 있겠지만 최소한 이 전무의 경영부실이 계열사들의 피해로 이어졌다는 의혹에 대해서만큼은 이번에 결말을 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삼성중공업은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피해지역 주민들을 위해 1000억 원의 지역발전기금 출연을 결정했다고 지난 2월 29일 밝혔다. 일각에선 피해에 비해 적은 금액이란 평도 나오지만 그동안 피해지역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을 감안하면 반 삼성 정서를 조금이나마 달래는 데 일조할 것이란 자체 평가가 있었을 법하다.
여러 정황상 특검팀의 2차 수사시한 연장 논란이 있을 것을 예상한 것인지 경제단체들도 삼성 구명을 위한 움직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한 경제단체는 ‘삼성그룹 같은 초일류기업을 여럿 육성해야 7%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정부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국반도체산업협회(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이상완 삼성전자 LCD총괄 사장)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이기태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 등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의 회장들이 삼성전자 임원들 일색인 점 또한 우호적 여론 조성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삼성이 특검 수사기간 2차 연장 무산을 100%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특검팀에 소환된 삼성 전·현직 고위임원들 중 이건희 회장에 불리한 증언을 한 인사도 있었다고 한다. 김용철 변호사 경우처럼 외부에서 영입됐다가 좋지 않은 감정으로 삼성을 떠난 인사들에 대해 삼성 수뇌부가 잔뜩 신경을 기울인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특검 수사 2차 연장을 막으려는 움직임만큼이나 이번 기회에 기필코 삼성을 ‘손보려는’ 행보 역시 부산하다는 점을 삼성 또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