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제 4대 민선 농협중앙회 회장에 이명박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인 최원병씨(가운데)가 선출됐다. | ||
최근 농협엔 인사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난 1월 중순에 농협 계열사 사장직을 추천방식에서 공모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기존 추천방식은 말이 추천이지 대부분 농협중앙회 임원들이 차지해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이 높았다.
그런 까닭에 계열사 사장직 인사방식을 바꾼 것을 두고 “최 회장이 큰 결단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랐다. 회장 권한을 축소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
지난 3월 초엔 더욱 ‘쇼킹’한 일이 벌어졌다. 인사 청탁을 한 농협 직원 110여 명에게 ‘경고장’이 날아든 것. 발신 명의는 인력개발부장이었지만 최 회장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인사철만 되면 힘 있는 인사들에게 청탁하는 것을 관행으로 생각해오던 직원들에게 철퇴를 날린 것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최 회장의 인사 개혁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 중 하나였던 농협중앙회 임원 인사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농협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최 회장이 지난 1월 농협중앙회 임원 인사에서 자신의 출신 지역 농협 직원들을 대거 승진, 발탁했다”며 “이에 대해 ‘후퇴한 인사’라는 비난이 일자 최근 파격적인 인사개혁을 실시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계열사 사장직 인사방식을 바꾼 것이나 인사 청탁을 한 직원에게 경고장을 보냈던 것은 ‘고향 사람 챙기기’라는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란 얘기다.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한 것이 최 회장 취임 후 단행된 임원 인사에서 경북 출신 인사들은 눈에 띄게 약진했다. 보통 지역농협에서 서너 명이 중앙회로 올라오는 데 비해 올해 인사에서는 열 명이 넘는 경북 지역 직원들이 중앙회로 옮겨온 것.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김용득 회원지원부장이다. 김 부장은 최 회장과 안강농협(경북 경주)에서 같이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자신의 연고지에서 직원들을 끌어올리자 이득을 본 곳이 또 있다. 바로 경북 지역 농협이다. 무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승진하거나 자리를 옮겼다. 이것 역시 예년에 비해 50%가량 많아진 것. 그러자 다른 지역 농협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남 지역 농협 관계자는 “아무리 회장을 배출한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지역과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꼬집었다.
농협중앙회 회장선거는 조합장들이 뽑는 간선제다. 따라서 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조합장들을 잘 관리하면 된다. 최 회장이 전국 조합장을 관리하는 주요 보직인 회원지원부장에 자신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용득 씨를 임명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상당수 조합장들 또한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선출되면 중앙회에서 임원을 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온갖 수를 동원한다. 결국 간선제는 회장과 조합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거방식은 농협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선거과정에서 갈린 상처가 쉽게 봉합되지 않았기 때문. 중앙회에서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지역 조합장들을 장악하기 위해 권한을 중앙회로 더욱 집중시켰다. 현재 대부분 지역조합은 중앙회의 재정 지원에 의존해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이 겉으로는 개혁과 화합을 외치면서 자신의 지역 출신을 중용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최 회장이 추진해야 할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다. 농협에서 신용사업은 전체 수익의 90%를 웃돌고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분리 문제가 나왔으면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다. 쉽게 말해서 신용사업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뒷전이 돼버렸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것.
따라서 최 회장 체제에서 성공적인 개혁을 완수하려면 농협의 본분인 경제사업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한편 농협은 3월 안에 농협개혁위원회(농개위)를 출범할 예정이다. 농개위는 최 회장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작하기도 전부터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농개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민동욱 대외협력국장은 “농개위에서 논의되는 사항은 참고사항일 뿐이다”라며 “농개위가 들러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농개위가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농개위에 조합장들이 참여하는 것도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조합장이 과연 농협 내부개혁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회장의 대리인으로서 감시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 회장은 지난해 회장선거에서 “외풍을 막아내고 우리 스스로 개혁하겠다”고 조합장들에게 호소한 바 있다. 농협 관계자도 “일단 내부에서 개혁을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금만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