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대한통운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 교환사채 발행 규모를 당초 약속보다 크게 늘리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내부 ‘M&A 배탈’의 징후일까. 사진은 박삼구 회장. | ||
이처럼 M&A를 통해 재계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계 서열을 7위까지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회장은 ‘M&A의 미다스 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급격하게 덩치를 불려 배탈이 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 금호아시아나의 주요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은 나란히 교환사채(EB·일정 기간이 지나면 채권 보유자의 청구가 있을 때 미리 결정된 조건대로 발행회사 보유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특약이 있는 사채) 546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EB를 투자자들이 사들이는 과정에서 마찰음이 들리고 있다. 투자자들이 EB를 사들일 경우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표면 이자율이 2%로 낮게 책정됐기 때문. EB 발행에 참여했던 은행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3% 밑으로 내려갈 줄 알았더라면 참여를 재검토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미 약정이 돼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EB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투자자들은 “EB 한 주당 17만 1000원이라는 가격도 너무 비싸다”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3월 19일 종가기준 대한통운 주가는 10만 7500원. 향후 주가상승 여부도 불투명하다. EB를 교환할 수 있는 만료기간인 2013년 2월 21일까지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한 투자자는 선뜻 EB를 교환하기는 힘든 상황. 결국 금호아시아나가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위해 무리한 금액을 입찰금으로 써낸 부담을 고스란히 투자자들이 짊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서는 EB 발행으로 재무적 부담을 한시름 덜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당초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만 EB를 발행하기로 했던 것에서 계획을 변경해 지난 17일엔 금호산업도 EB 546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이로써 금호아시아나는 계열사 EB 발행을 통해 무려 1조 6000억 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이를 두고서 투자자 측에서는 “EB 발행이 유리한 것으로 판단되자 그 액수를 늘린 것은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일각에선 “애초에 자금 조달 능력도 없으면서 대한통운을 인수한 것 아니냐”라는 의혹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처럼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EB 발행을 포함해 여러 차례 ‘말 바꾸기’를 하자 최근 금호아시아나와 박삼구 회장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한 듯하다. 특히 금융권 일각에서는 그 강도가 더한 것 같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신뢰를 잃는다면 금호아시아나가 앞으로 M&A에서 승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투자자’ 측과의 불협화음도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대한통운 인수에 참여했다가 제외된 것으로 알려진 농협은 최근 금호아시아나 계열사 중 한 곳이 신청한 대출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어긋난 관계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 전략적 투자자로 이름을 올린 효성(100억 원) 고려강선(100억 원) 대상(500억 원)과 관련해서도 구설이 나오고 있다. 효성과 고려강선은 금호그룹 계열사에 납품을 하는 회사. 그런 까닭에 금호아시아나 측의 투자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 대상의 경우 금호아시아나와 사돈관계에 있다. 박 회장의 여동생 현주 씨는 임창욱 명예회장의 부인. 따라서 금호아시아나의 부탁을 모른 척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금호아시아나 내부에서도 불안한 기운이 감지된다. 대한통운 인수에 총대를 멘 대우건설과 아시아나는 더욱 그래 보인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고유가에 환율급등까지 겹쳐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룹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약 1조 4000억 원가량인데 이보다 세 배 많은 금액을 대한통운 인수에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구조조정 소문도 솔솔 흘러나온다. 특히 아직은 ‘남의 식구’라는 인식이 강한 대우건설 직원들 사이에서는 ‘어느 지역 영업본부가 철수한다더라’ ‘누가 그만둔다더라’는 ‘카더라통신’이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얼마 전 박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우건설 직원들을 자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부인했지만 박 회장이 말 바꾸기를 한 전력이 있어 이 말을 의심스런 눈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대한통운 인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금호석유화학(금호석화)의 지분을 팔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박 회장과 아들 박세창 상무는 금호석화 지분 234만 6512주(10.01%)를 가지고 있다. 금호석화 주가가 5만 5700원(3월 19일 종가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박 회장 부자는 금호석화 지분을 팔아 약 1307억 원의 돈을 챙길 수 있다. 박 회장으로서는 돈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석유화학부문 계열 분리를 통해 후계구도도 다질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4일 금호가 3세인 박철완 박세창 박준경 씨가 나란히 금호산업 실권주 10만 6500주를 배정받았다. 이들은 이 실권주를 한 주당 3만 2200원에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산업 주가가 3만 6500원(3월 19일 종가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각각 4억 5700만 원이 넘는 평가차익을 올린 것.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오너들이 보기에 큰 액수는 아니지만 회사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직원들이 알면 실망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