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숙원사업이던 TV홈쇼핑에 진출하면서도 여지없이 초토화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롯데의 기대와 달랐고 업계의 걱정과도 차이가 있었다.
지난 14일 공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2007년 매출 2420억 원, 순이익 393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 2530억 원, 순이익 546억 원이던 2006년 ‘우리홈쇼핑’ 시절에 비해 오히려 실적이 떨어진 것. 게다가 경쟁업체인 GS홈쇼핑의 5929억 원, CJ홈쇼핑의 5188억 원에 비하면 매출 규모가 절반도 안된다.
롯데그룹은 지난 2006년 8월 최대 계열사인 롯데쇼핑을 앞세워 우리홈쇼핑의 지분 53%를 4667억 원에 인수하며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었다. 우리홈쇼핑은 당시에도 업계 4위로 실적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유통업계는 ‘롯데’라는 브랜드 파워에다 새로운 업종에 진입할 때 롯데가 종종 보여주곤 했던 이른바 ‘초토화 전략’이 만나면 ‘빅뱅’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우여곡절 끝에 우리홈쇼핑의 채널명을 ‘마침내’ 롯데홈쇼핑으로 바꾼 뒤에는 매출이 급격히 뛰어오르기도 했다. 롯데에 따르면 당시 롯데홈쇼핑의 ‘간판 교체 효과’는 전년대비 40% 이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마케팅 공세가 한풀 꺾이면서 실적은 급격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고 경기침체까지 장기화되면서 롯데 브랜드 파워는 결국 힘을 잃고 말았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비록 공격적인 마케팅은 펼쳤지만 롯데백화점 등 그룹사 간 시너지 효과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들은 롯데홈쇼핑의 대대적인 마케팅을 보면서 ‘백화점 물건을 싸게 파나보다’라는 기대로 TV 앞에 모여 앉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홈쇼핑과 별 차이 없는 제품구성인 것을 알고 실망했다는 것.
또 TV홈쇼핑을 처음 경영해보는 롯데가 홈쇼핑 소비자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TV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사는 소비자들은 브랜드 파워보다는 가격과 사은품에 훨씬 민감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TV홈쇼핑 업체들은 롯데홈쇼핑의 마케팅을 보면서 다들 실패를 점쳤다”면서 “오프라인의 강점이 별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롯데닷컴의 실패를 통해 배우지 못한 듯하다”고 꼬집었다.
2대주주이자 사돈기업인 태광그룹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다. 롯데그룹은 롯데홈쇼핑 인수를 둘러싸고 태광그룹과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대결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 2006년 태광그룹은 미디어사업 확장을 위해 우리홈쇼핑 지분 45.04%를 확보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롯데가 지분 53.03%를 인수해 우리홈쇼핑 경영권을 차지하자 2007년 2월 태광산업은 서울행정법원에 “우리홈쇼핑의 최대 주주를 롯데쇼핑으로 변경한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태광산업은 1심과 2심에서 잇달아 패했지만 3월 초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롯데 신격호 회장의 남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서스식품 회장의 사위로 두 그룹은 사돈지간. 이호진 회장은 자신이 인수하려 했던 홈쇼핑을 사돈이 중간에 가로챈 것에 대해 분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두 그룹의 싸움은 경영권 분쟁이라기보다는 집안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해석이 많다.
아무튼 이 싸움의 와중에 롯데홈쇼핑은 TV홈쇼핑의 사활이 걸린 채널 배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1위인 태광의 ‘괘씸죄’에 걸려 외곽채널로 밀리는 설움을 당해야 했던 것. 여기에 만만찮은 송출수수료 부담 등이 실적 부진 요인으로 꼽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롯데홈쇼핑이 방송 시간대를 통째로 파는 ‘정액방송’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매출 연동 수수료 개념을 도입한 것도 패착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액방송이란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려는 업체가 TV홈쇼핑사의 분당 매출액을 기준으로 자신의 매출액을 미리 산정해 방송 전에 TV홈쇼핑업체에게 비슷한 금액을 지불하고 방송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제품을 공급하는 입장에서는 만약 매출액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 자칫 손실을 볼 수도 있는 일종의 모험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후발 TV홈쇼핑업체들이 많이 쓰는 방식인데 롯데는 이를 버리고 매출이 많으면 수수료도 많이 받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롯데홈쇼핑은 이름을 바꾼 첫해인 지난해 수익 향상보다는 외형 확대에 더 치중했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규모는 줄었지만 총 거래액은 6764억 원으로 오히려 11.2% 늘었다”며 “SO에 지불하는 수수료 부담이 늘어 실적이 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측은 올해 실적은 작년과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1,2월 누적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9% 증가한 점을 근거로 든다. 새로 CEO에 부임한 신헌 사장의 공격경영도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롯데쇼핑 상품본부장을 지낸 ‘오프라인’ 출신인 신 사장은 롯데홈쇼핑을 업계 선두권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 방침이다.
태광그룹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롯데홈쇼핑은 최근 이사회를 개최하고 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된 이상호 아이즈비전 사장과 임일호 해덕기업 대표이사 대신 태광 측 인물을 등기이사에 올리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롯데그룹 측이 태광에 보낸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하고 있다. 이후 태광 측은 롯데홈쇼핑의 채널번호를 이른바 ‘골드채널’로 조정해줬다. 롯데홈쇼핑이 안팎의 악재를 털고 ‘유통공룡’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