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회장(사진)의 딸 주영 씨가 금호석유의 지분 매입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주형 씨의 지분 매입 수량은 그때그때 달랐다. 적게는 단 1주부터 많게는 1만 주가 넘었다. 돈만 생기면 주식을 샀다는 의미다. 또 2월 들어 갑작스레 많은 돈이 주형 씨에게 흘러갔다는 뜻이며 금호석유 내에 다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조짐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금호석유 주가가 12만 원대에서 오르내린 것을 감안한다면 주형 씨는 주식 매입에만 무려 100억 원 가까이 쓴 셈이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께서 늘려야 할 지분을 따님이 대신 늘리는 것”이라며 “시기가 적절하다는 판단에서 지분을 확대하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확대해석이란 ‘경영참여’를 말한다.
주형 씨의 지분 매입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박찬구 회장의 딸인 데다 딸이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금호가의 가풍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금호가에서는 딸들이 금호의 지분을 확대하거나 경영에 참여한 경우가 없다. 이는 고 박인천 창업주가 집안의 분란을 우려해 ‘상속은 남자에게만 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금호가는 지금껏 이를 선대회장의 유훈처럼 지켜 왔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가풍도 변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재 주형 씨는 금호와 관련 없는 대기업에서 해외영업 담당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0년 입사해 현재 직급은 대리다. 최근까지 회사 내에서 사직을 비롯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 회사로 들어갈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금호석유 측은 ‘경영참여’에 손사래를 치고는 있지만 내심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이와 관련, 박찬구 회장 일가와 박 회장의 형 고 박정구 회장 장남 박철완 상무 관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금호석유 지분 9.98%를 보유하고 있는 박철완 상무는 금호석유의 개인 최대주주다. 전체로 봤을 때도 한국산업은행(14.0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금호석유 내에 갈등이 잠복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금호석유 관계자는 “두 분 관계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금호석유가 박찬구 회장 아래 김성채 사장과 이서형 사장의 각자대표 체제라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서형 사장은 박철완 상무의 선친인 박정구 회장 시절 금호건설 대표를 지낸 인물. ‘박철완 사람’으로 분류돼 있다. 더욱이 이미 퇴직한 상태였던 이 사장을 금호석유는 재영입했다.
2009년 금호석유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을 당시 박찬구 회장과 박철완 상무가 공동 경영자로 추대됐고 채권단은 이들에게 각자 한 명씩 대표를 추천토록 해 박 회장은 김 사장을, 박 상무는 이 사장을 추천했다. 금호석유가 자율협약에서 졸업했음에도 둘의 동거는 계속되고 있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는 김 사장이 다 챙긴다”며 “이 사장에게는 현재 별다른 역할이 없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이 취약한 지분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주형 씨의 지분 매입이 관심을 끄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박 회장이 직접 매입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딸을 통해 매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뒷말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고 증여도 자연스레 이뤄지며 ‘딸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는 것.
100억 원에 달하는 돈의 출처도 의문이다. 더욱이 금호는 이제까지 딸들에게 상속을 하지 않은 재벌이었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정확한 돈의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증여 형태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여성 배제 원칙 재벌가는 LGㆍ효성ㆍ코오롱 등 남성 세다 우리나라 재벌가 중에서는 여전히 딸들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거나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장자 승계 가풍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LG, 효성, 코오롱을 들 수 있다. 비록 허창수 회장이 초대 회장이기는 하지만 재계에서는 LG와 분가한 GS도 심정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과 닿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의 경우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입적시키면서까지 장자 승계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코오롱은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고 이원만 창업주-이동찬 명예회장-이웅렬 회장’으로 이어져 왔다. 효성 역시 장자 승계 가풍이 짙다. 얼마 전 조 회장의 차남 조현문 효성 부사장이 부사장직을 사임하고 회사에서 나와 로펌에 들어간 것도 후계가 장남 조현준 사장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인 조 전 부사장은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고 원래 직업을 찾아간 셈이다. 물론 장자 승계 분위기가 강한 이들 기업에서는 딸들의 경영 참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차, SK, 두산 등에서도 딸들의 경영 참여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현대차의 경우 정몽구 회장의 세 딸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가 계열사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지만 고문이거나 호텔 전무여서 현대차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SK와 두산은 워낙 딸보다 아들이 많은 기업이다. 삼성은 딸들의 경영 참여가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딸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미 재계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범삼성가의 딸들도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롯데, 한진 등도 딸들의 경영 참여에 적극적인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