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오른쪽)과 영화 <크로우>에 출연한 그의 아들 브랜든 리. 브랜든 리도 요절하며 ‘비극적 인생’을 대물림했다.
가장 신빙성 있는 음모론은 마리화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스테로이드나 최음제가 사망 원인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였던 것에 반해, 이소룡이 마리화나에 어느 정도 중독되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성공에 대한 강한 갈망을 지녔던 그는 쇼 비즈니스의 세계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긴장 해소를 위해 가끔씩 마리화나를 넣은 쿠키를 먹곤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홍콩에선 매우 심각하게 여겨졌다. 미국과 달리 홍콩에서 마리화나는 매우 심각한 문화적 거부감을 지닌 대상이었다(차라리 이소룡이 아편을 했다면 별 문제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소룡이 마리화나를 접했다는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서 쉬쉬하는 대상이 되었고, 그만큼 오히려 실제보다 부풀려져 루머로 돌기도 했다.
전통 무술인들과의 갈등도 사망의 ‘진짜’ 이유로 제기됐다. 중국 무술 사범들은 이소룡이 전통 무술을 돈 벌이에 이용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고, 은밀히 점혈법(급소를 제압하여 상대방을 마비시키거나 기절 혹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술)을 이용해 이소룡을 죽였다는 것이다. 점혈법은 모르겠지만, 이소룡이 전통 무술인들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건 사실이었다. 이소룡은 전통을 고수하는 걸 반대했고 외국인들에게도 기꺼이 무술을 가르쳤다. 이소룡의 제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드밀은 영춘권 유파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는 스승인 엽문에게 영춘권을 배웠는데 이소룡이 영춘권을 서구화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다.
쇼브라더스의 런런쇼나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우 같은 영화계의 거물이 죽였다는 설도 있었다. 이소룡은 홍콩 영화계에서 최초로 배우이자 제작자의 위치에 섰던 스타였고 수익 배분에도 간여했는데, 기존의 산업적 질서에 도전했던 그의 행보가 거슬렸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소룡이 가라테를 업신여겨 일본 무술인들이 죽였다는 설, 길에서 우연히 시비가 붙어 삼합회가 죽였다는 설, 화면을 잘 받기 위해 했던 땀샘 제거 수술의 부작용이라는 설 등 수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소룡이 항상 죽음에 대한 강박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일찍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성공을 향해 매진했다. 인터뷰에서도 “늙기 전에 죽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고, 자신의 가문에 어떤 저주가 있다며 1965년에 아들 브랜든 리가 태어났을 땐 주술 행위로 악귀를 내쫓기도 했다. 그런데 이소룡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브랜든 리도 요절했는데 아버지보다 젊은 나이인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8세에 아버지를 잃고 반항적인 성격으로 성장한 브랜든 리는 1980년대 중반에 배우로 데뷔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얼굴을 알린 건 1990년대 초. 조금씩 액션 스타로 부상하던 그는 1993년에 <크로우>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죽음의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작자인 그린 제임스 오바르는 연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치료하기 위해 <크로우>라는 원작 만화를 만들었고, 그 내용은 죽은 사람이 되돌아와 악당을 처치한다는 것이었다. 1993년 2월 1일에 시작된 촬영은 문제가 많았다. 촬영 첫 날 세트를 제작하던 목수가 감전되는 사고가 있었고, 이후 폭풍으로 세트 일부가 물에 잠겼다. 불만을 품은 스태프 중 한 명은 자동차를 몰고 세트로 돌진하기도 했다. 어두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대부분 밤에 촬영된 영화는 사고의 연속이었다. 브랜든 리의 매니저는 열악한 환경에 항의하며 “이러다 주인공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도 촬영은 이어졌고 크랭크업을 8일 앞둔 3월 31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브랜든 리는 4번 스튜디오에서 과거 회상 장면을 찍고 있었다. 바로 그가 죽는 장면이었고, 마약 딜러가 44구경 매그넘 권총을 그에게 쏘는 설정이었다. 약 4.5미터 앞에서 상대 배우는 총구를 당겼고 브랜든은 세트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진짜 총알에 맞았고, 복부 오른쪽 아래에 큰 상처를 입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3월 31일 오후 1시 4분에 사망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총알 발사 장면 때 썼던 총알의 탄자 부분이 분리되어 총 안에 끼어 있었고, 이후 브랜든 리에게 공포탄을 발사하는 장면에서 함께 밀려나와 맞은 것이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경찰은 ‘사고사’로 단정 내렸고, 결국 제대로 피지도 못한 스타는 20대의 삶을 마감한 채 아버지와 함께 비극적 전설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 <크로우>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부분을 대역 촬영과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보충했고,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편 유족들은 브랜든 리가 총에 맞는 장면을 담은 필름을 영구 파기하기를 제작사에 요구했다.
이소룡과 브랜든 리 부자의 죽음은 호사가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들의 우연한 요절은 ‘저주’라는 표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두 사람이 지녔던 많은 공통점들을 비교하며 ‘비극적 유전’을 이야기했다. 1970년대 초에 이소룡이 홍콩의 구룡 지역에 고급 저택을 구입했는데, ‘소룡’(小龍)이 ‘구룡’(九龍) 지역으로 들어와 그 지역의 혼령들이 노한 결과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기괴한 죽음 이후에 떠돌기 마련인 이야기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2013년. 올해는 이소룡의 40주기이자 브랜든 리의 20주기가 되는 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