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이 회장이 고작 1.86% 보유하고도 지배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논란이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가장 적합한 개선방안으로 거론되는 지주회사제에 대해 이 부회장은 “지주사 체제로 가는 데 20조 원이 들고 그룹 지배구조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당장 가능한 일이 아님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이 순환 고리의 병폐를 4~5년 안에 끊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일각에선 최근 진행 중인 금융(보험·증권) 지주사의 비금융 자회사 지배 허용 논의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31일 금융지주사의 비금융 자회사 지배를 가능케 하겠다는 큰 그림을 내놓은 바 있다.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삼성 지배구조에 적잖은 보탬이 된다.
지난해 생명보험사(생보사) 상장안이 확정돼 조만간 삼성생명의 상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13.34% 지분을 보유한 삼성에버랜드다. 만약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주가가 치솟아 삼성생명 지분 가치가 삼성에버랜드의 자산총액 중 절반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돼 삼성에버랜드의 금융 지주사 선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경우 현행법상 에버랜드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들 지분을 매각해야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새 방안이 현실화하면 에버랜드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들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 여기에 삼성생명 지분 가치가 폭등하게 되면 에버랜드는 지배에 필요한 만큼을 제외한 일부 지분을 매각해 삼성전자 같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더 사들여 그룹 지배구조를 더욱 단단히 다질 수 있다.
쇄신안 발표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이 은행업에 진출할 것이란 세간의 관측에 대해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러나 증권사의 결제기능이 허용되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내년 초 시행 예정이라 삼성생명 등이 지배하는 삼성증권의 역량을 키워 간접적 은행 소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결국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의 금융과 비금융 간 출자규제 완화에다 생보사 상장, 자통법 시행 등만 잘 이뤄지면 훗날 총수직에 등극할 이재용 전무가 이건희 회장에 비해 좀 더 안정적인 그룹 경영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셈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삼성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는 한결 더 수월해진다. 공익재단의 상속·증여세가 면제되는 동일법인 지분보유 한도를 기존의 5%에서 10%로 늘리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현재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각각 4.68%씩의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검 수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차명 주식 16.2%의 존재가 드러나 이 회장은 기존 지분 4.54%에 더해 총 20.74% 지분을 자신 명의로 보유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증여세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중 절반가량에 대해 비싼 세금을 물지 않고 계열 공익재단들에 증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익재단에 물려주고 남은 지분을 상속세를 지불하면서 이재용 전무에게 물려준 뒤 삼성생명이 상장돼 주가가 폭등하면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상속세로 지불한 돈 중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도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4.68%는 고 이병철 창업회장의 넷째사위이자 이건희 회장의 매형인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이 2006년 작고할 당시 증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이 전 회장이 자신의 주식이 아니기에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차명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삼성 쇄신안 발표를 통해 삼성그룹의 대외 대표가 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각에선 이재용 전무가 새 총수에 오르기 전까지 이수빈 회장에게 ‘얼굴’ 역할을 맡긴 것이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겨냥한 포석일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