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부자란 그 말 자체에 적은 수, 즉 ‘소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인 세상에서 부자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 홀로 사는 세상에서도 부자는 의미가 없다. 무인도에 사는 로빈슨 크루소에게 일용할 양식 외에 부가 필요할 이유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자의 편에 서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신은 1년에 11만 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20만 달러를 버는 세계와 자신은 10만 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8만 달러를 버는 세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11만 달러를 가진 사람이 더 부자임에도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만족감이 큰 10만 달러의 세계를 택했던 것이다.
부자가 소수가 되는 이유는 소수의 편에 섰을 때 보상의 크기가 커지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출간된 에릭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나온다. 컴퓨터상에 ‘경제적 생명체’를 만들고 기본적인 몇 가지 능력과 자연 자원이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들 생명체의 삶의 조건은 자연 상태에 가까웠다. 이들 가상의 생명체는 섬에 사는데 그 섬에 있는 자원은 설탕이었다. 섬의 양 끝에 설탕 더미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설탕을 많이 차지하는 생명체가 부자가 된다. 과연 어떤 가상의 경제적 생명체가 설탕을 많이 차지해 부자가 됐을까.
이 실험에서 등장하는 경제적 생명체는 태어날 때의 조건은 동일했다. 설탕을 더 많이 갖고 시작하는 존재는 없었다. 이들의 부의 크기가 결정된 것은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였다. 한 가상의 생명체는 주위를 둘러본 뒤 다른 생명체들이 동·서·남쪽에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우연히도 그 생명체는 설탕이 있는 북쪽 핵심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충분히 설탕을 먹어 치웠다. 먹고 남은 것은 보관도 했다.
반대로 남쪽 황무지로 갔던 생명체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다른 방향으로 이동을 했지만 이미 그곳에는 다른 생명체들이 실컷 설탕을 먹고 저축까지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그 지역도 이미 만원이었다. 경쟁이 치열해 자신이 먹을 설탕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잘못 방향을 잡은 생명체가 먹을 수 있는 설탕의 양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 컴퓨터 실험은 부가 창출되고 부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부자란 ‘소수 게임’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소수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길을 따라서는 안 된다. 다른 생명체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는 곳으로 향했던 생명체들은 설탕을 아예 얻지 못하거나 적은 양만 얻었을 뿐이다.
이런 원리를 우리는 여러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스톱도 그렇다. 고스톱을 잘 치는 사람들은 적게 잃고 딸 때 많이 딴다.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 때는 어떻게든 ‘피박·광박’을 면해 3~4점으로 판을 끝내게 만든다. 그러나 혼자 많이 먹을 수 있는 상황, 즉 소수 게임 상황이 되면 상대방에게 ‘피박·광박’을 씌워 점수를 크게 낸다.
▲ 월마트 창업자-샘 월튼(왼쪽), 투자의 귀재-워런 버핏 | ||
투자에서도 이런 원리를 적용해 보자. 필자의 경험이다. 지난 2003년과 2004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코스피지수(옛 종합주가지수)는 600~700포인트 대였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사는 온통 부동산이었다. ‘온 국민은 부동산 투자 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고 실제 이때 투자한 이들은 현 시점에서 보면 대개 만족할 만한 수익을 냈다. 하지만 부동산은 최소 투자 금액의 단위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당시 적립식 펀드에 가입을 했다. 매월 급여에서 일정액을 떼어 투자하다보면 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더 중요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였다. 주식시장은 소수 게임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시 회사 후배들에게 10만 원이든 20만 원이든 적립식으로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라는 말을 했지만 모두 다 부동산에만 관심을 가졌다.
통상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소수 게임 상황은 비관론이 가득할 때나 주식시장이 인기가 없을 때 만들어진다. 반대로 참여자가 많아지는 순간은 대개 어느 정도 가격이 올라 있는 시점인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자칫하면 ‘상투를 잡을’ 수도 있다.
투자가 소수 게임이란 사실을 잘 아는 투자의 대가들은 그래서 역발상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금세기 최고의 투자가 워런 버핏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4월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이 폭락을 하는 가운데 버핏은 오히려 투자규모를 늘렸다.
“사람들이 증시를 두려워할 때 과감히 투자하고 다른 사람들이 과감히 투자할 때 투자를 줄여라. 지금이 투자 적기다.”
그가 얼마 전 한 경영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버핏은 이처럼 지금까지 좋은 회사들의 주식이 경기침체나 비관론으로 인해 가격이 싸지는 시점을 이용해 주식을 매입해 왔다.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배짱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배짱과 지식이 없이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은 쓸모없는 고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역발상 투자의 핵심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애널리스트 마이클 모바신은 이렇게 말했다.
“소수가 아닌 다수의 바보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