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특검 수사결과 이건희 회장의 세금포탈 혐의가 드러나 세무조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 ||
그러나 삼성을 휘감아온 먹구름을 모두 걷어내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이 회장 등 특검이 기소한 인사들에 대한 재판과 더불어 국세청의 세무조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회장 기소사유 중 하나가 세금포탈인 만큼 추징 주체인 국세청이 어떤 방법으로 삼성을 다룰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난 이 회장의 차명재산은 약 4조 5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2조 3000억 원가량의 삼성생명 차명주식은 세금포탈과 무관하다는 것이 삼성 측 주장이다. 공소시효가 지난 것을 제외하면 포탈로 지적된 차명계좌 금액은 2조 원가량이다.
여기서 얼마가 추징될지를 정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차명계좌 보유기간 동안의 주가 등락과 가산세 등을 고려한 세금 계산이 간단하지 않은 까닭에서다. 지난 4월 22일 삼성 쇄신안 발표 당시 이학수 부회장은 “차명계좌에서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은 이 회장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유익한 일을 위해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볼 것”이라고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액수와 용도는 함구했다. 추징액이 구체화되고 난 다음에 환원액수와 활용 방안을 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이제 삼성은 법원 못지않게 국세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회장의 양도소득세나 임원 명의 차명계좌에 대한 증여세 부과 등이 세무당국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사안들에 대한 법리 검토 과정에서 국세청이 ‘세무조사 카드’를 꺼내들지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의 탈루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차명계좌가 개설된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필요한 까닭에서다. 국세청 입장에선 재계 1위 삼성의 과세내역을 어느 때보다 면밀히 털어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수사 기간 동안 특검팀과 국세청 그리고 삼성 사이에 형성된 묘한 알력관계 역시 세무조사 실시 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뜨겁게 달구는 요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정·관계 로비 대상 중 하나로 국세청을 거론했다. 특검팀의 삼성 임직원들 과세자료 요청을 국세청이 거부했다가 특검팀이 국세청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특검팀이 국세청으로부터 이 회장 일가의 과세자료를 넘겨받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이 일로 국세청의 삼성 비호 논란이 잠시 불거지기도 했다.
삼성의 국세청 로비 정황이 없다는 특검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김 변호사가 검찰에 비해 국세청에 대한 로비 액수와 범위가 더 컸다고 밝힌 점은 여전히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게다가 국세청은 김 변호사의 로비 폭로에 이어 지난해 11월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이 세무조사 무마 청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올 초엔 삼성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지급한 수임료가 비자금이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특별 세무조사에 나섰다가 김앤장 직원들이 사무실 진입을 막아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앤장 조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검찰에 버금가는 위세를 자랑하던 국세청에겐 예기치 못한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삼성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는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얼룩진 국세청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씻김굿’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 특검 수사가 종착역을 향하던 때인 지난 4월 1일 단행된 국세청 인사는 당시부터 나돌던 ‘특검 종료 후 삼성 세무조사설’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다. 인사 결과를 접한 정보 관계자들은 “로비 구설수에 오른 삼성 핵심 임원들과 학연·지연이 없는 인사들이 대기업 조사 분야 요직에 임명됐다”는 내용의 분석 보고서를 상부에 올렸다고 한다.
현 상황에서 삼성 세무조사 같은 민감한 건은 전적으로 청와대 의중을 살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김 변호사의 로비 주장 이후 몇몇 국세청 고위인사들과 삼성 측 인사들 간의 친분설이 정보관계자들 사이에 나돌았으며 이 같은 내용이 청와대에도 보고됐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등으로 핀치에 몰린 현 정부가 여론 환기를 위해 삼성 세무조사 같은 사안을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반면 현 정부의 위기 타개책이 경기부양이라 보는 입장에선 삼성의 투자·고용 확대가 절실한 만큼 별도의 세무조사는 없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삼성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실시는 국세청에게도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맘먹고 실시한 세무조사 결과가 특검 수사 발표와 진배없을 경우 불거질 여론 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전 방위적 세무조사라는 ‘양날의 칼’을 품고 있을 법한 정부와 세무당국이 이 회장과 삼성을 향해 당근과 채찍 중 어느 것을 내밀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