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내놓은 여러 개혁 정책이 뭇매를 맞고 있다. | ||
지난 1월 최원병 회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계열사 사장 선정을 추천방식에서 공모로 바꿨다(<일요신문> 827호 보도). 이러한 선정 방식이 가장 먼저 적용된 곳이 바로 농협중앙회가 지분 52.15%를 가지고 있는 NH투자증권이다.
NH투자증권은 최 회장의 공모 지침에 따라 3월 14일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를 구성하고 3월 17일부터 28일까지 지원자 접수를 받았다. 총 26명이 지원한 가운데 서류심사 등을 거쳐 3명으로 압축됐고 이들은 다시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면접심사를 받았다. 결국 최종 후보자는 정회동 전 흥국증권 사장이 낙점됐다.
이 과정만 보면 최 회장의 인사개혁은 얼핏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추위 구성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돼 몇몇 농민단체와 언론으로부터 ‘밀실 공모’라는 비난이 제기됐기 때문.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라는 지적이 나오자 NH투자증권은 뒤늦게 사장 선정 과정을 공개했다. NH투자증권에서는 “사추위 구성원이나 지원자 등을 공개하면 외압이 있을 것을 우려해 비공개로 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은 애초에 ‘투명성’을 위해 공모를 실시한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장 최종 후보자를 농협중앙회가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 부분도 개혁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계열사 사장이 최대주주이자 최종인사권자인 농협중앙회 회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농협중앙회를 장악하고 있는 최 회장의 몫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사정에 정통한 A 씨는 “정회동 사장이 평가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안다”며 “결국 농협중앙회 입맛에 맞는 후보가 내정돼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사장 공모 방식은 새로운 낙하산 인사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NH투자증권에서는 “(점수와 관련해서는)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3월 출범한 ‘농업개혁위원회’(농개위)도 최 회장이 내놓은 또 다른 개혁 정책이다. 최 회장의 공약이기도 한 농개위에는 조합장 농민단체 학계인사 등 18명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농개위가 과연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농개위 안에 농협중앙회를 대변하는 인사들이 많아 개혁안을 도출해내기가 어렵다는 것. 설사 합의를 이뤄낸다 하더라도 아무런 구속력이 없어 농협중앙회가 농개위 안을 받아들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농개위는 출범 후 두 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 관여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관계자는 “회의를 했지만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굳이 농개위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에 비판적인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최 회장의 개혁안들이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 증권가에서는 “농협중앙회가 올해 8월 자동차보험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 소식에 몇몇 농민단체들이 발끈했다.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뒷전이고 신용사업에만 주력해왔던 것을 비판해왔는데 또 신용사업 부문을 확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농협중앙회에서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각 언론사에 해명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농협중앙회의 자동차보험 시장 진출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공공연하게 “자동차보험은 숙원 사업”이라고 밝혀왔기 때문. 이를 근거로 A 씨는 “농협중앙회가 모든 준비를 끝냈지만 여론 때문에 그 시기를 늦춘 것 같다”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농협중앙회의 자동차보험 시장 진출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청와대다. 이유는 농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청와대 내부에서 “2017년으로 예정돼 있는 (농협의) 신용사업 분리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류에서 농협중앙회의 자동차보험 시장 진출을 청와대가 반길 것 같지 않다는 관측이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농협중앙회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은 “탈정치화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술대에 오르는 것도 농협중앙회가 권력과 유착했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이러한 얘기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신임 회장이 취임할 때면 어김없이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았다.
최 회장도 예외는 아닌 것일까. 올해 1월 농협중앙회는 계열사인 남해화학 지분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팔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를 두고 농협중앙회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것 같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을 박 회장에게 넘기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던 농협중앙회가 갑자기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
결국 농협 안팎에서는 “정권이 바뀐 이상 알짜배기 기업을 굳이 넘겨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자회사인 화학업체 휴켐스를 박 회장에게 팔았던 전례와 비교해보면 농협중앙회의 ‘정치성’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신중히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해명했다.
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의 학연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그 어느 때보다 정권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며 “탈정치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