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속을 까맣게 태웠던 삼성전자는 4월 25일 52주 신고가를 경신한 이후 보란 듯이 지난 4월 28일에는 2년 만에 70만 원 선을 넘으며 71만 6000원을 기록한 뒤 5월 6일 74만 5000원까지 급등했다.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한국 증시를 이끄는 ‘대장주’로 불리던 삼성전자가 ‘악동’에서 ‘우등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셈이다.
삼성전자 주가의 이 같은 상승세는 표면적인 이유와 내면적인 이유로 나뉜다. 여기서 표면적 이유가 ‘실적 호전’이라면 내면적 이유는 ‘특검 종결’이다.
우선 삼성전자는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17조 1000억 원, 영업이익 2조 1500억 원의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부문별로는 특히 비반도체 부문의 예상을 상회하는 실적 호전이 주된 요인이었다. 대우증권 송종호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이 같은 성적표에 대해 “원화 약세가 우호적 환경이 됐고 제품믹스(product mix·한 기업이 시장에 제공하는 모든 제품의 배합) 효과, 원가 절감과 비용 통제가 기대 이상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뛰어난 실적을 놓고 ‘깜짝 실적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본격적인 실적 호전이 시작된 것인가’로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문가 대부분의 의견은 후자 쪽에 가깝다. 송 애널리스트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삼성전자는 향후 2년간 다이내믹한 성장 스토리를 그려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1분기 실적호전의 배경이 되었던 LCD, 휴대폰 부문의 긍정적인 상황은 2009년까지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2분기 이후 반도체 부문의 턴어라운드(실적호전)가 가시화됨에 따라 하반기에는 주력 부문 모두 균형적 이익을 창출하는 포트폴리오 효과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삼성전자에 대한 장밋빛 전망의 이유에 대해 분야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삼성전자의 핵심인 반도체 부문은 당초 적자가 거론될 정도로 실적이 우려되는 사업부문이었다. 하지만 평균 20∼30%의 판매가 하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부문 전체에서 4%의 이익률을 냈다. 이는 대단한 원가 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량을 낮추기로 했음에도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공격적인 투자로 입지를 강화하는 강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
더불어 LCD가 호황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호재다. 무엇보다 TV 부문은 2008 북경올림픽에 대비해 TV 제조사들이 미리 제품을 사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통신 부문 역시 휴대폰의 판매 단가는 4.7%가량 하락했지만 환율 상승과 정보통신 장비 실적 개선으로 매출액은 이전 분기보다 3% 증가했다. 이 또한 원가절감 노력의 결과다.
원가절감과 비용 통제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불안한 대내외 사업 환경을 정면 돌파한 삼성전자에 대해 신영증권의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적수가 없는 공룡’이라고 치켜세웠다. 신 애널리스트는 “2007∼2008년의 극심한 불황을 겪으면서 거의 모든 디램(DRAM)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꼬리를 잘라야 하는 도마뱀 신세가 되고 말았다”면서 “이러한 피 튀는 상황 속에서도 삼성전자는 여유롭게 희생양을 고르고 있는 공룡과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향후 또다시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가 도래하겠지만 꼬리 잘린 도마뱀들은 이미 더 이상 공룡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로 87만 원을 제시했다.
이 같은 실적호전으로 인한 주가 상승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바로 ‘특검 종결’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악재가 터진 기업의 주가는 일시 조정을 받지만 악재가 끝나면 오히려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산그룹의 경우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이 마무리된 뒤 지주회사 격인 두산이 본격 상승하기 시작해 2005년 1만∼2만 원이던 주가가 지난해 말 30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효성도 지난 2006년 초 분식회계를 고백한 뒤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당시 1만 5000원 선이던 주가는 지난해 11월 7만 원까지 급등했다.
삼성전자 주가 상승세도 이 같은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주가만 놓고 보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시점부터 아이러니하게 주가가 본격 상승하기 시작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것은 지난 2007년 10월 29일. 당일 2.44% 올라 54만 5000원을 기록했다. 폭로 하루 전날은 4.93% 폭등했다. 김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오히려 주가는 오른 셈이다. 증권시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 특검법을 놓고 지루한 공방이 벌어질 때 주가가 하락했지만 실제 삼성 특검 법안이 국회를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11월 23일에는 3.34%나 급등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4월 22일 오너 퇴진, 전략기획실 해체, 지배구조 개선 등의 혁신안을 내놨다. 이것이 삼성전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한화증권 서도원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의 해체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혼란이 초래될 수 있지만 삼성전자의 독립경영체제 구축의 발판을 마련했고 전반적인 경영 투명성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특히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서 애널리스트는 또 “삼성전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임직원 인사를 단행하고 실적발표 후에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도 펼 것으로 예상돼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이라며 “반도체 및 LCD 관련 투자도 확정돼 그동안의 경영 공백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SK증권 박정욱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주식 가치는 해외 비교 가능한 전자업체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아왔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한국 산업 수준이 선진국화되었으며 국민소득도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섰으므로 한국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는 할인 요소는 무시해야 될 때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