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왼쪽)이 사촌형인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으로부터 독립해 SK건설을 중심으로 소그룹화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 ||
그런데 지난 5월 16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최 부회장이 비상장인 SK건설의 등기임원으로 등재됐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최 부회장의 노출 빈도가 부쩍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SK건설은 최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SK케미칼의 자회사로, SK케미칼 계열에서 매출액이 가장 큰 회사다. 최 부회장의 등기임원 선임은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섰음을 뜻하는 동시에 SK그룹으로부터의 분가를 위한 ‘고삐 당기기’로 풀이되고 있다.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아들들인 최신원(SKC 회장)-최창원 형제가 창업주 동생 고 최종현 회장의 아들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에서 분가할 것이란 관측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특히 지난해 4월 발표된 SK그룹의 지주사 개편안에서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 계열이 제외된 것은 분가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SKC에 대한 SK그룹 지주사 SK㈜의 지분율이 42.50%에 달해 SKC 지분 2.78%에 불과한 최신원 회장의 분가가 당장 어려운 반면 SK케미칼에 대한 SK㈜의 지분율은 ‘0%’다. 지주사 전환 발표 이후 최태원 회장은 SK케미칼 계열 지분을 모두 처분해 최창원 부회장의 독립을 가로막는 지분구조상 장애물은 사라졌다.
SK케미칼 등기임원으로 있던 최 부회장이 SK건설 같은 자회사들 등기임원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이나 부회장 직함을 고수해온 것은 사촌형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의식한 몸 낮추기 일환으로 평가받아왔다. 이런 까닭에 SK건설 등기임원진 합류를 전격 결정한 것은 독자적인 소그룹화를 위한 오너경영 체제 확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K건설은 SK케미칼의 자회사지만 매출 규모는 4조 원대로 SK케미칼 매출의 네 배에 육박해 계열 최대 수입원으로 꼽힌다.
최 부회장이 보유한 SK케미칼 지분은 8.79%다. 자사주를 포함한 우호지분율이 24.37%에 달해 사실상 SK케미칼과 SK건설의 실질적 오너로 평가받지만 뒤탈 없는 독립을 위해선 최 부회장의 지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까닭에 최 부회장의 SK건설 등기임원진 합류가 SK건설 상장 효과 극대화를 위한 전초작업이란 평으로 이어진다. 잠재적 총수가 책임경영에 나선다는 인상을 심어줘 가치를 높인 뒤 상장을 하면 엄청난 평가차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 부회장은 자신 명의 지분 9.61%와 SK케미칼 지분 58.03%를 포함해 67.64%의 SK건설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상장 이후 막대한 평가차익을 남긴 뒤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지분만을 남기고 매각해 SK케미칼 지분 추가 매입용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셈.
SK건설이 지배주주로 있는 SK D&D(옛 아페론)의 상장 여부도 관심사다. SK D&D는 지난 2004년 SK건설과 사업적 연관성을 갖는 실내건축공사 및 부동산개발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 최창원 부회장이 쌈짓돈을 불리기 위해 전폭 지원하는 비상장 계열사란 시선을 받아온 곳이기도 하다.
초기 지분 비율이 최창원 부회장 70%, 안재현 대표이사 30%로 구성돼 있던 SK D&D는 지난 2007년 6월 유상증자를 통해 몸집을 불리면서 상장 가능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증자를 통해 최 부회장 지분율은 종전의 70%에서 38.76%로 줄었지만 주식 수는 35만 주에서 16만 7000주 늘어난 51만 7000주가 됐다. 안 대표는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율이 30%에서 11.24%로 하락한 반면 종전까지 지분구조에 참여하지 않았던 SK건설이 60만 주를 취득해 단숨에 44.98% 지분율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SK D&D의 매출액은 2005년 161억 원에서 2006년 554억 원으로, 그리고 지난해 897억 원으로 급성장했는데 이 가운데 80% 이상이 SK건설 물량이다. SK D&D가 상장하게 된다면 최 부회장과 SK건설에 엄청난 평가차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 부회장이 사실상 지배하는 SK건설이 경영에 필요한 안정적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최 부회장의 SK D&D 지분을 전량 매각해 SK케미칼 지분 추가 확보에 활용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 부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나선 것과 더불어 최근 새롭게 구성된 SK건설 이사진 면모 역시 주목받고 있다. SK건설은 최근 임시주총을 통해 등기임원 7명 중 1명에 불과했던 사외이사 비중을 4명으로 늘렸다. 사외이사진엔 기존의 변근주 연세대 교수 외에 김병일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 이종백 전 국가청렴위원장, 안용찬 애경 부회장 등이 신규로 합류했다.
이 가운데 김병일 고문과 이종백 전 위원장 영입에 대한 재계 인사들의 관심이 뜨겁다. 김 고문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이종백 전 위원장은 서울고검과 부산고검 검사장을 지냈다. 기업이 두려워하는 두 권력기관의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활약에 시선이 쏠리는 것.
SK건설도 지난 몇 년간 당국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해온 바 있다. 2006년 9월엔 재개발 비리와 관련, SK건설이 압수수색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7월엔 지하철 공사 입찰 담합과 관련해 공정위로부터 검찰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전력 탓에 SK건설 사외이사진 확대는 경영 투명성 제고 차원을 넘어 검찰 공정위 등의 행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외연 강화로 풀이되기도 한다. 또 소그룹화를 위한 우량 계열사 체질개선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SK케미칼 측은 “(최창원 부회장의) 등기임원 합류는 책임경영 의미일 뿐 상장이나 분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