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증권가에 위치한 우리투자증권 모습. 원안은 박종수 사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7일 우리투자증권은 보통주 1주당 1100원씩, 우선주 1주당 1150원씩 모두 1675억 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3259억 원의 절반 이상, 배당성향(당기순익 중 배당금의 비율) 51.4%에 이르는 고액 배당이다. 1145억 원을 배당했던 지난해보다 46.3% 증가한 금액. 그동안 “순이익의 50% 이상을 환원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온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곳은 최대주주(지분율 34.96%)인 우리금융지주로 509억여 원을 챙기게 됐다. 그런데 ‘고액배당’ 발표 이후인 13일 우리투자증권은 총 3000억 원의 무보증 후순위채를 발행한다고 밝혔고 20일 공모를 완료했다. 만기는 5년 6개월. 용도는 △배당금 1675억 원 △운영사업부의 헤지펀드 운영 및 영업자금 1000억 원 △IB사업부의 부동산 투자자금 80억 원 △기타 운영자금 245억 원 등이다. 결국 ‘빚내서 배당잔치’를 벌이는 셈이다. 의무사항도 아닌 배당을 위해 왜 빚까지 내야 했을까.
그 배경엔 ‘증권사판 BIS비율’로 불리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있다. 증권사의 유동성 자기자본(영업용 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눠 얻어진 비율로, 높을수록 재무건전성이 좋다고 평가한다. IMF 이후 부실 증권사 퇴출을 위해 금융감독원은 NCR을 150% 이상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300%를 넘겨야 장외파생상품을 거래할 수 있다. 한데 우리투자증권의 NCR은 2006년 3월 717%, 2007년 3월 535%, 2008년 3월 398%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당기순이익의 절반을 배당에 써버린다면 NCR은 급격히 떨어질 터. 때문에 자기자본 증가로 계산돼 NCR의 하락없이 자금조달이 가능한 후순위채 발행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배당과 채권 발행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자금 여력은 충분했다. 단지 NCR 관리 차원에서 후순위채를 발행한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사내에서조차 이를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투자증권노동조합(위원장 구희득)은 지난 15일자 <쟁의속보>를 통해 ‘배당금 규모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무리한 배당을 하면서 NCR을 관리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결정이다. 과도한 배당이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 등 특정주주를 의식한 것 아닌가’라는 내용의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배후’에 관한 의혹 제기다.
이 부분에 대해 증권업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인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의 유상증자에 주목하기도 한다. 지난 3월 20일 우리금융지주는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유상증자에 각각 1000억 원, 800억 원씩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금융지주는 1800억 원의 유상증자 자금이 필요한 상황. 우리금융지주의 주 수익원은 자회사의 배당금인데 이번 우리투자증권의 배당으로 509억여 원을 챙긴다. 일각의 관측대로 경남·광주은행의 유상증자와 연결시키면 증자에 필요한 최대 필요 자금의 28.3%를 확보하는 셈.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병원 회장 재직 시절 계열사에 고배당을 지시했는데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반대했고 박종수 사장은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는 ‘박 회장과 박 행장이 티격태격하다 동시에 퇴임하게 됐다’는 관측(<일요신문> 836호 보도)과 정황상 맞물린다. 실제 배당성향 50%를 넘기며 고배당을 한 우리투자증권과 달리 우리은행 배당총액은 지난해 4248억 원에서 절반 이상 줄어든 2003억 원(배당성향 11.3%)이었다.
‘고배당 배후설’에 우리투자증권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하면서 “배당성향 50% 이상 정책은 박종수 사장의 취임 일성이었고 2005년부터 지켜오고 있다. 수익 만큼 배당하는 건 주주에 대한 당연한 의무다. 돈 많이 벌었는데 배당을 적게 하는 게 오히려 더문제”라고 반박했다.
반면 이번 배당에 직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배당이 크고 빚이 많을수록 직원들 몫은 줄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투자증권은 2006년부터 임금이 동결된 상황. 노조는 현재 작년부터 끌어온 ‘2007년 임·단협 교섭 타결을 위한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최근 금융공기업 인사태풍에 우리금융그룹은 박병원 회장과 박해춘 행장, 여기에 자회사인 정경득 경남은행장과 정태석 광주은행장까지 한번에 날아갔지만 박종수 사장은 살아남았다. 지난 4월 금융공기업 기관장 일괄사표 때 박 사장 측은 ‘우리투자증권엔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표 제출을 거부했다.
이제 박 사장의 거취는 곧 선임될 신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결정에 달려 있다. 그룹내 CEO들이 동반 퇴임한 상황에서 신임 회장이 박 사장까지 교체하는 데는 부담이 따를 수도 있다. 박 사장이 정권교체 후폭풍으로 발생한 인사태풍과 노조의 압박을 이겨내고 남은 임기를 지킬 수 있을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