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 의사를 밝히기 전부터 포스코는 자금 동원력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 기대감에 '인수 후보 영순위'로 꼽혀왔다. 지난해 영업이익 3000억 원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로부터 올해 영업이익 7000억 원 달성 전망을 듣고 있는 알짜배기 기업. 자산총액이 30조 원을 넘는 포스코가 수조 원대 매물인 대우조선해양을 단독 인수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포스코 수뇌부가 직접 나서 공동인수 가능성을 흘린 까닭은 무엇일까.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공동 인수 검토 발언이 나오자 재계의 시선은 포스코와 더불어 인수 후보군에 오르내려온 현대중공업 두산 삼성중공업 등에 쏠리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는 까닭에서다.
후보군 중 포스코와 더불어 풍부한 ''실탄 보유고'' 덕분에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돼온 현대중공업의 경우 포스코와 ''지분 교류''를 맺어온 점이 눈에 띈다. 전략적 제휴 차원에서 양측의 지분 1~2%가량을 상호 교차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수조 원에 이를 대우조선 인수자금 부담을 덜고 같은 조선업종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적군을 아군으로 돌린다''는 차원에서 양측의 합작 시나리오를 그려봄직하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에겐 이미 돈을 써야 할 대상이 차고 넘쳐 보인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은 형수인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현대건설 새 주인 자리를 놓고 일전을 벌일 태세다. 현대중공업은 매물로 나와 있는 CJ투자증권을 인수할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이미 조선업 강자로 우뚝 서있는 현대중공업이 무리하면서까지 대우조선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할 가능성에 고개를 가로 젓는 재계 인사들도 제법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포스코의 컨소시엄 상대로 두산에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대우조선 1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두산의 핵심계열사인 두산중공업 지분 12.53%를 보유해 2대주주로 있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골드만삭스의 대우조선 매각자문사 자격을 취소하고 별도 자문기관 없이 직접 매각작업 수행을 선언해 두산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가 대우조선과 원래 한 식구였다는 인연이 매각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대우조선은 1998년 워크아웃 기업 지정 이후 2000년 대우종합기계와 분리됐다. 이는 포스코가 두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두산-산업은행 인연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을 불러일으킨다.
자금력이 풍부한 삼성중공업도 유력 파트너로 물망에 오르내린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같은 거제도에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반도체 사업 성장 정체로 ''굴뚝산업을 신수종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가 삼성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포스코가 단독이 아닌 공동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면 컨소시엄에 참여한 여러 업체들이 대우조선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나눠 갖는 동시에 포스코의 첨단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포스코 설립 이념인 '제철보국'(철강 생산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 취지에도 부합해 보인다. 포스코는 최근 들어 '제철보국'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한다는 비판론을 접하고 있다. 주주들의 지지로 201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이구택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중견업체 지원보다는 외국인 비중이 50%에 달하는 주주 이익 극대화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경제발전을 기치로 내건 청와대의 눈에 결코 좋게 비칠 수 없는 대목이다. 포스코의 상징적 존재이자 이명박 정부와 친분이 두터운 박태준 명예회장의 최측근 인사가 올 초 정기인사에서 승진을 하지 못하자 '이 회장이 조직 장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론이 나돌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포스코 측은 “누군가 (포스코 경영진을) 음해하기 위해 퍼뜨린 소문 같다”고 일축해 왔다.
최근엔 정부 부처가 포스코 수뇌부에 '모 후발업체에 대한 기술·인력 협력'을 제안했다고 알려진다. 포스코가 이윤 극대화보다 국내 업체들 경쟁력 강화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정부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기류가 포스코 수뇌부의 '대우조선 공동 인수' 발언을 이끌어냈다는 시각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구택 회장의 컨소시엄 발언이 확대돼 온갖 억측을 낳자 이 회장은 5월 21일 '2008 포스코 아시아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 입시 요강도 발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직 인수방법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이르다는 얘기다. 포스코 관계자도 “다른 기업과의 공동 인수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것이지 컨소시엄 구성이 확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진화에 나섰다.
고수익이 보장된 대우조선을 독식할 것인가, 아니면 수익 배분을 통해 이구택 회장 체제를 흔들어대는 구설수를 차단할 것인가. 두 가지 길 가운데 이구택 회장이 과연 어느 쪽을 택할지 재계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