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층 재건축 아파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최근 1억~2억 하락한 가격으로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 ||
강남 집값이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걸까. 강남 집값 하락은 이제 시작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가. 이 같은 물음에 하나로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강남에서 벌어지는 집값 하락 현상은 제도적 요인과 함께 사회적 요인이 함께 접목돼 벌어지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론만 간추려 말하자면 고가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영향이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하면서 강남 부동산 신규 취득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고 여기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가 가세해 월급쟁이의 강남 진출을 막았다. 제도적 요인으로 인해 강남권에서 신규 수요는 줄어든 반면 신규 공급은 크게 늘었다.
현재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주공아파트 재건축 물량 2만 여 가구가 오는 8∼9월 본격 입주를 시작하고 서울 서초와 반포에서도 6월부터 반포 주공3단지, 반포 주공2단지 재건축 일반 분양 물량이 청약에 들어간다. 비록 조합원 지분이 많아 일반 분양 물량은 1000가구 이하지만 전체 가구 수가 6000가구에 달해 강남권 아파트 신규 수요를 상당부분 흡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제2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성남 판교 신도시에서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즉 강남권에 일시적으로 대규모 공급이 이뤄지면서 수요와 공급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값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일반 아파트 가격이 수급 불균형에 따라 가격이 주춤하면서 인근 아파트 값을 기준으로 시세가 형성되던 재건축 시장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송파구 내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가락시영 아파트의 조합원 분담금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재건축에 대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자 전체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락시영 42㎡(13평)형은 최근 10% 이상 급락해 5억 원 선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버블세븐지역이 갑작스레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시장 친화적 정부''를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지난해 연말부터 주춤하던 집값은 지난 5월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일부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한 달 새 1억 원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우선 지난 5월 강남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보자. 강남 집값 상승을 선두에서 이끌던 강남 개포동 주공 아파트 단지. 부동산 중개업소가 상가 건물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을 정도지만 손님들 발걸음이 뚝 끊겨 적막감이 돌 정도다. 매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수천 가구 중 평형별로 시세보다 낮은 두세 개 매물이 나와 있을 뿐이다. 이 두세 개 매물이 전체 가격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 개포주공 1단지 42㎡형은 얼마 전 8억 원에 거래되다 7억 5000만 원까지 하락했다. 한 달 전만 해도 10억 3000만 원에 거래되던 49㎡(15평)형은 9억 2000만 원에 매물로 나왔지만 찾는 사람들이 없다. 불과 얼마 전인 5월 첫째 주만 해도 49㎡형은 10억 원에 도장을 찍었었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많은 서울 강동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강남구보다 하락폭이 더욱 가파르다. 일부 평형의 경우 지난 2006년 최고가 대비 2억 원 넘게 급락했다. 현지 부동산업소 선경공인 박노장 사장은 “평형에 상관없이 가격이 하락하자 단지 내에서 작은 평형을 팔고 큰 평형을 사려는 ''교체'' 수요 이외에는 신규 매수자가 전혀 없다”고 전한다.
이 같은 강남권 집값의 하락은 경매 시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강남권 아파트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매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낙찰되면서 최초 감정가 대비 실제 낙찰된 가격이 100%를 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최근 ''신건'' 물건은 감정가 대비 80% 수준으로 떨어져야 입찰자가 나타날 정도다.
지난해 말 경매에 나온 서울 강남 압구정 현대아파트 160㎡(49평)형이 대표적 사례. 이 아파트는 26억 원에 첫 경매가 진행됐지만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아 1월 3일 20억 8000만 원에 두 번째 경매가 진행됐다. 5명이 입찰에 참가해 23억 7661만 원에 낙찰됐다. 최초 감정가 대비 실제 낙찰된 가격은 91.4%. 당시 시세가 23억 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돌면서 시세 수준으로 입찰가를 써 넣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부동산 정책은 참여정부의 기조를 당분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히자 상황이 정반대로 돌아서면서 매물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결국 낙찰자는 입찰 금액의 10%인 2억 800만 원을 포기했고 이 아파트는 지난 4월 24일 20억 8000만 원에 다시 경매에 나왔다. 하지만 이날 입찰자가 나타나지 못해 16억 6400만 원에 입찰이 다시 진행되게 됐다. 즉 최초 경매가에서 9억 원이나 떨어진 셈이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강남권 아파트 값의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나비에셋 곽창석 대표는 “잠실과 반포, 판교 등에서 신규 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체 강남권 아파트 값이 하향 안정세를 찾고 있다”면서 “대출규제에 신규 매수세가 막히고 종부세에 아파트를 내놓은 다주택자들이 늘어나면서 당분간 강남권 아파트 시장은 철저히 실수요자들 중심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6월이 접어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실제 지난 5월 집값 하락을 주도한 급매물은 종부세 부과 기준일인 6월 1일을 앞두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한 매물이 주를 이뤘다.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집주인들이 다급한 나머지 주변 시세보다 최대 1억 원까지 매물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물론 이들 급매물은 5월 말까지 잔금을 치르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 같은 급매물이 6월에 들어서면 사실상 사라질 것이란 예상이다.
개포주공 1단지 상가 내 위치한 우성공인 관계자는 “지난해도 종부세 부과 기준이 되는 6월 직전인 4∼5월에 가격이 약세를 보인 후 6월 이후 회복됐다”면서 “비록 가격은 많이 떨어졌지만 매물 또한 많지 않아 6월 들어 집 주인이 매물을 회수하고 매물 한두 개만 소화되면 바로 직전 시세를 회복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입주 물량에 강남 집값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 잠실 지역 아파트는 벌써부터 오름세로 접어들었다. 잠실주공 2단지 인근 에덴공인 김치순 사장은 “전세값은 109㎡(33평)형 시세가 2억 5000만∼3억 원으로 형성돼 많게는 1억 원 가까이 하락했지만 매매값은 이미 반등했다”면서 “비록 시세 변동폭이 큰 재건축 아파트는 당분간 약세가 지속되겠지만 종부세 회피용 매물이 소진된 6월부터 일반아파트는 옛 시세를 회복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