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개인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은 주로 ‘수익률’에 초점을 맞춰 이뤄진다. 간단한 의사결정 방식은 현재 최고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수익률 만능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의사결정은 대개 의도와 다르게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주식형 펀드는 해외 펀드(역외 펀드 제외)를 포함해서 1554개다. 이 가운데서 수익률 1등을 할 확률은 1554분의 1이다. 만일 이 펀드가 2년 연속 1등을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241만 4916분의 1이다(1554분의 1을 곱하면 된다). 그럼 3년 연속 1등 할 확률은. 37억 5277만 9464분의 1이다.
현재 수익률 1등 펀드에 가입한다는 것은 이 펀드가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뤄진 의사결정이다. 그러나 확률을 생각해 보면, 현재 1등 펀드가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계속해서 현재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터무니없는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또 현재의 성과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간의 이런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심리학에선 ‘최근성(Recency) 편견’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최근성 편견이란 간단히 말해 최근에 일어난 일이나 사건을 사람들이 주로 기억하거나 인지한다는 것이다. 최근성 편견은 종종 투자에서 치명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최근에 발생한 수익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그것이 지속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탓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성 편견은 주식이나 부동산 폭등기에 자주 등장하는 특성이 있다. 2003년 이후 부동산값이 폭등하자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부동산값이 뛰어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올바른 것일까.
2003년 이후 집값 폭등기 이전에 또 한 번의 폭등기가 있었다. 바로 1980년대 말, 필자가 대학생이었을 때다. 당시 “전세금을 올려 주지 못하면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다른 집을 구하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가 연탄가스를 피워 놓고 온 가족이 자살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말 집값 폭등은 90년대 초부터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10년 가까이 집값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외환위기로 인해 97년과 98년에는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90년대 초부터 2008년 현재까지의 기간을 살펴보면 정작 집값이 강한 상승세를 보였던 시기는 2003년부터 2006년, 3년 동안이었다. 16~17년 동안 정작 큰돈을 벌어준 시기는 3년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집값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답한다. 전형적인 최근성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석유값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요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 전에 가장 석유가격이 비쌌던 시점은 1970년대 말 제2차 오일쇼크 때다. 당시 국제 유가는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40달러까지 올랐다. 현재 130달러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야 한다. 석유 가격은 20년 가까이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도 오르지 않았다. 다른 물건들은 다 올랐는데 석유가격은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밀한 비교를 위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70년대 말 40달러의 유가는 현재 103달러와 같다고 한다. 현재 석유값은 103달러를 돌파해 130달러 부근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많은 사람들은 20년 가까이 석유값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석유값은 비싸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석유값이 오르고 그에 따라 물가가 오르자 이를 매우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다.
왜 사람들은 석유값이 오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이도 역시 최근성 편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오르지 않는 것을 봐온 탓에 기억 속에 석유값은 비싸지 않다는 인식이 똬리를 틀었던 것이다. 상황이 바뀌면 바뀐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과거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비열한’ 감이 있다. 10년 이상 오르지 않을 것처럼 보이다가 오를 때는 한꺼번에, 그동안 오르지 않은 것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급격하게 올라 버린다. 우리나라 집값이 그랬고, 최근 석유값도 그렇다.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뚫고 ‘비열하게’ 가격이 올라 버리는 것이다.
최근성 편견에 빠져 시장의 비열함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확률적 사고와 역사적 안목이 필요하다. 펀드 투자를 예로 들자면, 현재 수익률이 좋은 펀드가 앞으로도 얼마나 좋아질 것인가를 확률적으로 사고해 보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수익률 1등인 펀드가 2년, 3년 계속해서 1등 할 확률은 높지 않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아마도 주식투자의 귀재가 운용하는 펀드이거나 운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스타일이 다른 펀드에 나눠 투자하고 수익률이 나쁜 펀드에 추가 투자하는 것이다. 가치주 펀드가 1~3년 정도 침체를 겪으면 대개 성장주 펀드들이 좋은 실적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장주 펀드의 강세가 영원할 수는 없다. 때문에 가치주 펀드와 성장주 펀드에 나눠 놓고 추가 투자할 때는 오히려 덜 오른 쪽에 하는 것이 확률론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역사적 안목도 중요하다. 흔히 가격 폭등기에 주로 등장하는 말은 ‘이번만은 달라’ ‘역시 한국에서는 ○○이 최고야’ 같은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를 것도 없고 한국 시장만 중뿔나게 오르는 법도 없다. 오히려 이런 말들이 나올 때면 몸을 조심해야 할 때인 경우가 많다. 비열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 중 하나는 바로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긴 호흡을 갖고 현재 인기가 없는 투자처를 찾아 그것이 오를 때까지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