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신라와 제일모직의 몸 불리기가 이재용 전무로의 안정적 경영 승계를 위한 계열분리 전초 작업으로 비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일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 전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건희 회장의 첫째딸인 이부진 상무는 호텔신라에, 둘째딸인 이서현 상무는 제일모직에 각각 몸담고 있다.
두 사람이 각자의 회사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은 재계인사들 눈에는 이 전무로의 안정적 승계를 위한 계열분리 전초작업으로 비쳐 왔다. 최근 들어 두 회사가 기존 영역을 뛰어넘는 사세 확장에 열을 올리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거들고 있다. 수년 내 복귀하게 될 이재용 전무가 그룹 주력인 전자·제조업과 금융을 토대로 총수직에 오르는 과정에서 두 여동생 역시 각각 호텔신라와 제일모직을 축으로 한 별도 소그룹군을 형성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이부진 상무가 있는 호텔신라는 최근 기존의 숙박업 위주를 탈피하고 사업 다각화를 통해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올 초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면세점 업계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성으로 시장점유율 50%로 면세점 업계를 장악해온 롯데의 아성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텔신라는 월 평균 매출액 500억 원이 예상되는 인천공항 면세점 계약을 2013년 2월까지(5년 계약) 체결해놓은 상태다.
호텔신라는 지난 3월 5일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과 음식점업, 식료품 및 음료제조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공시를 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기존 주력분야와 거리가 먼 부동산업 추가를 두고 호텔신라의 계열분리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선이 늘어간다. 사업목적 추가를 통해 유통과 식품업 등에서 국내 시장을 석권해온 ‘범 삼성가’ 신세계나 CJ와 동종업계 대결이 불가피할 것이란 점도 이부진 상무의 홀로서기 과정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이서현 상무가 몸담고 있는 제일모직은 신규 계열사의 몸집 확장을 통해 내실을 키우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3월 휴대폰 노트북용 편광필름 제조업체인 에이스디지텍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의류 액세서리 제조판매업체인 개미플러스유통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지난해 3월 제일모직이 주당 1만 1940원에 인수한 에이스디지텍의 주가는 6월 3일 현재 2만 4200원까지 치솟았다. 1년 만에 본전 다 뽑고 이윤창출에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제일모직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개미플러스유통은 지난 4월 2일 유상증자를 단행해 주식 총수를 종전의 100만 주에서 700만 주로 늘렸다. 증자방식이 ‘주주배정’이었으므로 제일모직 몫만 고스란히 7배 늘어난 셈이 됐다. 비상장인 개미플러스유통의 몸집을 불린 뒤 상장 수순을 밟아 제일모직이 엄청난 차익을 거둘 가능성도 거론된다. 제일모직은 지난 3월 10일 음식점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한다는 공시를 내 주력인 섬유업에 국한되지 않는 ‘영토확장’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이부진(왼쪽)·서현 자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재 이부진 상무는 지난해 신규 취득한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9%를 비롯해 삼성에버랜드 8.37%, 삼성SDS 4.57%, 삼성네트웍스 2.81% 등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인 이들 지분가치를 업계에서는 2400억 원 정도로 평가한다. 이서현 상무는 삼성에버랜드 8.37%, 삼성SDS 4.57%, 삼성네트웍스 2.81% 등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가액은 2000억 원을 약간 밑도는 것으로 알려진다. 6월 3일 현재 주가(호텔신라 2만 3500원, 제일모직 5만 2500원)로 따져볼 때 이를 통해 이부진 상무는 호텔신라 지분 26%가량을, 이서현 상무는 제일모직 지분 7~8%가량을 획득할 수 있다. 이부진 상무에 비해 이서현 상무가 계열분리에 필요한 자사 지분 확보에 애를 먹을 수도 있는 셈이다.
동생 이서현 상무의 제일모직 한 해 매출규모가 3조 원이 넘는 것에 비해 이부진 상무의 호텔신라 매출액은 4950억 원대에 불과하다. 호텔신라의 영업이익은 제일모직(2228억여 원)의 10분의 1 정도인 235억 원 선이다. 만약 계열분리가 이뤄진다면 이부진 상무 입장에선 이미 소그룹 규모를 갖춰온 동생과의 형평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 규모나 자사 지분 획득용 실탄 보유고에서 각각 고충을 안고 있을 법한 두 자매가 안정적 계열분리를 위해 자기 몫을 바라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이 삼성에버랜드에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된다. 두 사람이 개인 2대 주주에 나란히 이름을 올려놓은 삼성에버랜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이다.
이 회장 아들 이재용 전무가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에 오르는 과정에서의 편법 논란이 결국 8년에 걸친 삼성에버랜드 사태를 부른 것도 이 같은 상징성 때문이다. 이부진-이서현 자매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16.74%가 그룹 경영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 회장이 후한 값을 쳐서 회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자칫 이재용 전무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획득가격 7700원에 대한 헐값 논란을 재점화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도 찜찜한 노릇이다. 삼성-신세계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 속에 신세계는 여전히 삼성 핵심 계열사 삼성생명의 지분 13.57%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13.34%)를 앞서는 최대주주인 셈이다.
여동생 회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광경이 아들 대에서까지 벌어지는 것을 이 회장이 절대 원치 않을 것이란 관점에서 이부진-이서현 자매의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어떻게 정리될지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