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현대건설에 관해서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관심이 있다”고만 밝힌 정도다. 그런데 재계에서는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의 양강 구도인 현대건설 인수전이 결국 3파전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두산그룹의 대우조선 인수전 참여는 ‘리허설’ 혹은 ‘페인트 모션’일 가능성이 크고, 진짜 목표는 현대건설이라는 관측이다.
두산그룹이 현대건설을 노리는 이유에 관해서도 제법 구체적인 분석이 나와 있다. 두산은 수년 전부터 해외사업에 사활을 걸고 모든 계열사가 뛰고 있는데 유독 건설부문만 해외진출이 더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대건설이 필요하다는 것.
두산은 건설장비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으로 올라선 두산인프라코어를 필두로 플랜트 사업에 강점을 지닌 두산중공업 등이 전 세계 시장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이런 사업들은 연계성이 높기 때문에 한 계열사가 사업을 따내면 다른 계열사들이 줄줄이 사업에 참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두산으로서는 해외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의 핵심인 건설부문에서 두산건설의 역량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 국내 건설업계 10위권인 두산건설은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몇 년째 애를 쓰고 있지만 성과가 영 신통찮은 상황이다.
이 바람에 두산그룹은 애써 수주한 해외 프로젝트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건설사업은 해외기업이나 다른 국내 건설사에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두산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면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진다. 해외건설 사업에 관한 한 현대건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지도와 사업능력을 지녔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평가다.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의 뿌리’임을 내세워 현대건설을 탐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증권가에서도 은근히 두산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부추기는(?) 분위기다. 지난 5월 14일 메리츠증권은 두산이 대우조선해양보다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편이 낫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메리츠증권의 전용기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두산그룹이 대우조선 M&A 참가 가능성이 있지만 현대건설 M&A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장의 시각도 있다”고 전제한 뒤 “두산건설과 현대건설의 건축과 토목에서의 시너지 발생이 가능하고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의 건설 공작기계 사업부는 현대건설과 시너지 발생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전 애널리스트는 덧붙여 “두산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면 시장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 현대건설 M&A에 참여하는 것이 두산그룹 주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두산그룹의 자금문제에 관해서는 부정적으로 봤다. “M&A에서 자금 확보가 경쟁력임을 감안할 때 두산그룹은 밥캣 인수에 상당한 가용 재원을 이미 소모했다. 두산그룹이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건설의 시가총액은 5월 13일 기준으로 9조 5205억 원. 외환은행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채권단의 지분율은 49.72%로 주식 가치만 4조 7312억 원에 달한다. 실적 호전과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한 가치는 최대 1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높은 가격은 현대건설 M&A에 뛰어드는 기업이 극히 적은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두산그룹 입장에서도 이처럼 막대한 현대건설의 매각 가격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의 탁월한 M&A 능력에도 불구하고 전 애널리스트의 전망처럼 자금력에 의문을 갖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밥캣 인수에 상당한 자금을 쏟아 부은 데다 얼마 전 중앙대학교까지 인수한 상황에서 1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분기 말 현재 두산 주력 계열사들이 현금화할 수 있는 자금은 약 865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계열사들의 경우 적자까지 기록해 M&A에 돈을 댈 형편이 못 되는 곳도 있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금융위원회에서는 과도한 차입을 통해 M&A에 나서지 말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두산그룹 측은 “(인수 대상이 대우조선해양이 되든 현대건설이 되든 간에)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주력 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자사주만 팔아도 4조 원은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그동안 대형 M&A를 통해 경험을 쌓은 외부자금 조달 능력도 두산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두산그룹의 한 관계자는 “M&A는 내 돈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금력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가 승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