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분야에서 성적이 저조했던 신동빈 부회장으로선 ‘전공’인 금융분야에서의 능력 발휘가 절실한 입장이다. | ||
롯데그룹은 지난 9일 코스모투자자문의 지분 50% 이상을 인수해 일본계 자산운용사 스팍스그룹과 공동 경영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스팍스는 현재 코스모투자자문 지분 67.9%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인수 지분과 금액, 롯데 측 투자회사는 실사작업 종료 후 결정된다.
롯데는 코스모투자자문을 향후 자산운용사로 전환할 계획이다. 가계의 금융자산이 늘어나고 연기금 시장이 커짐에 따라 국내 자산운용업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자산운용사까지 꾸리게 되면 롯데는 기존의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롯데손해보험과 더불어 금융전문기업의 구색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다.
롯데의 금융업 강화는 인수·합병(M&A)에 이은 엄청난 내부 물량 지원으로 이뤄져 왔다. 2002년 동양카드를 인수해 롯데백화점카드부문과 통합, 롯데카드를 탄생시킨 뒤 백화점 카드고객 인프라를 활용해 순식간에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코스모투자자문이 자산운용사가 되면 롯데손해보험과 더불어 롯데카드 기존 고객을 활용한 제휴상품 개발 등으로 급격히 몸집을 불릴 수 있다. 롯데는 스팍스가 보유한 해외 영업망을 적극 활용해 해외 영업도 강화할 전망이다. 스팍스는 현재 뉴욕 런던 홍콩 두바이 등지에 진출해 있다.
카드-캐피탈-자산운용을 갖춘 롯데그룹이 금융명가로 거듭나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증권사일 것이다. 내년 2월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사의 지급결제 기능이 허용돼 사실상 재벌의 은행 소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CJ투자증권 인수 주체로 현대중공업이 확정되기 전까지 롯데가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의 증권사 인수 노력을 잘 알고 있는 재계의 시선은 롯데가 코스모투자자문 인수를 결정하자 곧바로 대신증권으로 향했다. 롯데와 경영파트너가 된 스팍스그룹이 대신증권 지분 4.3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 일가의 자사 지분율이 6.55%에 불과하다는 점이 대신증권 인수 관측을 낳은 것이다.
대신증권 인수설에 대해 롯데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롯데가 코스모투자자문 인수 협상이 중단됐다고 밝히고도 결국 인수한 전례도 있어 대신증권에 대한 롯데의 공식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앞서 롯데가 한양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물밑협상을 벌인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진 바 있다. 롯데의 인수설이 확산되고 관련 언론보도가 나가자 4월 24일 유가증권시장본부가 이에 대한 조회공시를 한양증권에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튿날 한양증권은 공시를 통해 사실무근임을 밝혔으며 롯데 역시 인수 관련 소문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주식시장엔 롯데의 한양증권 인수 기대치가 반영됐다. 4월 초만 해도 1만 6000~1만 7000원 대를 오갔던 한양증권 주가는 5월 초 2만 4000원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후 한양증권 주가는 잠시 조정을 거친 뒤 6월 19일 현재 1만 9800원을 기록 중이다.
롯데와 인수 대상으로 거론된 증권사들이 극구 부인하는데도 좀처럼 소문이 잠들지 않는 배경을 신동빈 부회장의 향후 입지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유통 분야에서 신 부회장을 따라 다녀온 경영자질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되는 것이다.
신 부회장이 처음으로 대표이사를 맡았던 코리아세븐(편의점 세븐일레븐 운영 업체)은 그의 재임 시절 적자를 면치 못했다. 신 부회장이 롯데쇼핑 상장 대박 이후 야심차게 밀어붙인 에쓰오일(S-Oil) 까르푸 인수전에서도 쓴 입맛만 다셔야 했다. 롯데가 현금 보유에서만큼은 다른 기업 부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략부재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금융부문만 놓고 본다면 신 부회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신 부회장의 첫 번째 회사생활은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 근무로 알려져 있다. 금융권에서 사회생활 첫 발을 뗀 신 부회장은 1988년 롯데상사에 입사한 뒤 1995년 부산할부금융(현 롯데캐피탈) 설립에 관여했고 2002년 동양카드 인수 작업을 이끌었다. 올 초 대한화재 인수 역시 신 부회장 작품으로 전해진다.
신 부회장은 이미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지분 확보를 마친 상태다. 신격호 회장에 이은 차기 총수직 취임을 앞두고 경영자적 자질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 이 과정에서 금융업 확장 카드가 활용될 것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롯데에서도 신 부회장이 금융부문 M&A 작업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최근 롯데가 편의점 업체 바이더웨이 인수를 검토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롯데-바이더웨이 양측이 이를 부인하고 나선 바 있다. 물밑 협상 가능성을 주시하는 업계 일각에선 ‘세븐일레븐 적자경영’의 꼬리표를 떼고픈 신 부회장 의지의 반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만약 증권사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금융그룹 청사진에 ‘화룡점정’을 할 수 있다면 신 부회장의 롯데그룹 차기총수 등극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유통명가’ 롯데그룹이 ‘신흥 금융명가’라는 수식어를 다는 데 신 부회장이 과연 일등공신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