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중수 사장 | ||
KT는 최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낸 이태규 씨를 전무급 전문임원으로 내정했다. 이 전무(내정자)는 지난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팀장을 거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뒤 청와대에 합류했다가 4월 말 사직한 상태다. 공시내역에 기재된 KT 전무급 인사들이 1956~1959년생임을 감안하면 1964년생인 이 전무 발탁은 꽤나 파격적 대우인 셈이다.
이 전무가 정치권에서 기획통으로 인정받아 기업에서도 적합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란 평이 나오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코드 맞추기 작업의 일환 아니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KT가 민영화됐다고는 하나 정부정책에 민감한 통신사업의 특성상 청와대와 정치권의 기류를 읽어내는 데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 더구나 재계에선 향후 KT가 인수위나 청와대 출신 인사 여러 명을 더 영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T가 정국 흐름에 밝으면서 정치권 인맥과 맞닿아 있는 정부 출신 인사를 영입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을 지낸 차영 씨(현재 통합민주당 대변인)는 2004년 KT에 영입돼 마케팅 담당 전문임원(상무)을 지냈다. 차 대변인은 지난 1992년 대선 때도 김대중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미디어 컨설턴트를 맡았을 정도로 DJ 정부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전례를 되풀이하는 것과 같은 KT의 현 정부 코드 맞추기 시도가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노무현 정권 색깔 지우기’ 행보와 맞물렸기 때문. KT는 지난 16일자로 윤재홍 대외부문장(부사장)을 경영연구소장으로, 정만호 미디어본부장은 해외 교육파견으로 발령했다. 윤 부사장의 경우 대외부문장 직제를 없애고 대외부문장 아래 사업협력실과 사업지원실을 사장 직속으로 개편한 데 따른 인사이동이다.
윤 부사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서 정보통신부 관료 생활을 하다가 2004년 KT에 영입된 인사.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정만호 씨는 지난 2004년 KTF 자회사인 KTF엠하우스 대표로 영입된 뒤 지난해 12월부터 KT의 미디어본부장(전무)을 맡아왔다. 정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선거대책위원회, 청와대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다.
KT는 지난해 12월 정기인사에서 대부분의 부문장을 유임시키며 ‘부문장 위상 강화’를 통한 책임경영 실현 의지를 밝혔다. 이 때문에 윤 부사장 인사가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KT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경영연구소장이 대외부문장에 비해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대외부문장은 업계 흐름은 물론 정부부처와 정치권 동향 분석까지 맡아온 자리다. 이렇게 중요한 직제를 없애며 사람은 ‘밖’으로 보내고 실무조직은 사장 직속에 배치한 점은 남 사장이 직접 나서 대외관리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디어본부장으로 KT의 미래 동력인 IPTV(인터넷TV) 사업을 이끌어온 정만호 전무가 갑자기 해외파견 대상이 된 대목에서 ‘정치적 해석’은 더 힘을 받는다. 결국 윤 부사장과 정 전무 등 노무현 정부 출신들이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이명박 정부 인사가 요직을 꿰찬 것이 ‘남중수 사장의 정치적 고려’라는 해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KT 측은 “확대해석일 뿐”이라며 사실 무근임을 강조했다.
남 사장은 지난 2005년 KT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뒤 올 2월 연임에 성공, 2011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그런데 최근 행해지는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 단체장 물갈이 작업이 ‘노무현 정부 때 KT를 맡은 남 사장에게 그다지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란 시선이 제법 많다. 정부정책 기조에 휘둘리기 십상인 KT 수장으로서 최근 인사를 통해 현 정부와의 거리 좁히기에 적극 나섰다는 지적이다. 남 사장의 조직 개편작업이 현 정부를 ‘KT 프렌들리’로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