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전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전략기획실이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편법 승계 의혹과 비자금·차명계좌 논란의 온상이었지만 그룹의 장기전략 수립과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을 전담해 삼성의 초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그룹 살림을 주관하게 될 사장단협의회 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분간 여의치 않을 것 같은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설치된 위원회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관심사다.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삼성그룹의 최고기구가 될 사장단협의회는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40여 명으로 꾸려진다. 계열사 대표들을 한데 모아놓은 이 회의는 말 그대로 ‘협의’하는 곳이지 ‘결정’하는 곳은 아니다. 계열사 독립경영이 자리를 잡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제하에 재계 인사들은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설치될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가 그룹 전체를 이끄는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삼성 대주주로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이건희 전 회장의 의중을 반영할 기구로 평가받기도 한다.
계열사 간 사업조정을 맡을 투자조정위원회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김순택 삼성SDI, 김징완 삼성중공업, 이수창 삼성생명, 이상대 삼성물산, 임형규 삼성전자,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된다. 삼성 브랜드 유지를 위한 브랜드관리위원회는 이순동 제일기획 사장(위원장)을 필두로, 김인 삼성SDS, 최지성 삼성전자, 지성하 삼성물산, 김낙회 제일기획,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 등 모두 6명으로 짜여졌다. 그밖에 김종중 삼성전자 전무를 실장으로 하는 업무지원실이 신설돼 사장단협의회의 행정업무를 지원하고 대외적인 창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재계 일각에선 향후 투자조정위원회가 그룹의 ‘컨트롤 타워’가 될 가능성을 점친다. 일단 구성원들이 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의 수장들인 만큼 그룹 경영의 큰 방향을 짚어줄 집단으로 여겨지는 것. 이윤우 부회장과 임형규 사장을 빼곤 모두 전략기획실(옛 회장 비서실·구조조정본부)을 거쳤다. 전략기획실 해체로 그룹 내 고위급 인사 조정과 감사기능이 사라진 대신 전략기획실 출신 베테랑들을 모아놓은 이 위원회가 각 계열사들에 수시로 조언을 해줄 뒷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선 투자조정위원회보다 브랜드관리위원회의 활동에 더 큰 무게가 실릴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투자조정위원회에 속한 인사들 중 일부는 이미 현업을 떠난 상태로 각 계열사의 얼굴마담 격 수장으로 분류된다. 반면 브랜드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은 이건희 회장 아들 이재용 전무 시대를 준비할 조타수들로 보이는 것. 당분간 해외근무를 하게 될 이 전무의 그룹 경영권 승계 명분 축적을 맡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이순동 제일기획 사장 | ||
김인 SDS 사장은 이건희 전 회장 퇴임 이후 그룹의 간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됐던 인물. 결국 그룹 내 ‘큰형님’ 격인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얼굴마담 역할을 맡게 됐지만 김인 사장에 대한 이재용 전무의 신뢰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이 전무 시대를 열어젖히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최지성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해외행사에서 이 전무를 지근거리에서 동행하는 장면이 곧잘 포착되면서 이 전무의 핵심측근으로 평가받아왔다. 지난 5월 삼성전자 인사 당시 최 사장 윗선인 이기태 부회장과 황창규 사장이 전문분야가 아닌 보직을 부여받자 최 사장이 삼성전자의 실세로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돌았다.
‘사장님 일색’인 투자조정위원회와 브랜드관리위원회에 전무·상무급 인사 두세 명과 부장·차장급 인사 대여섯 명이 차출돼 위원회 활동을 뒷받침하게 된다고 한다. 전체 20명 선으로 꾸려질 두 위원회가 각 계열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취합·분석해 계열사들을 적절히 통제하는 작은 전략기획실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러나 100명 규모로 움직이던 삼성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두 위원회가 100% 대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몇몇 계열사들 내에서 그룹 전체 살림을 아우를 기획 업무가 진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단 인적구성상 제일기획이 주목을 받게 됐다. 브랜드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순동 사장이 제일기획 옷을 입게 됐으며 김낙회 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도 이 위원회에 포함돼 있다. 김 사장은 비서실·구조본에서 기획팀 임원을 지낸 그룹 내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엔 행정자치부 자문위원과 월드컵조직위원회 마케팅전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순동-김낙회 투톱을 축으로 삼성 브랜드 전략 수립의 중심에 제일기획이 서게 될 가능성이 주목받으면서 24만 원대인 주가가 조만간 30만 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에 등장했을 정도다.
부산고 선후배 사이인 장충기 윤순봉 부사장이 복귀할 삼성물산의 향후 그룹 내 위상도 관심거리다. 두 사람은 전략기획실 내에서 기획과 정보 수집·분석의 전문가로 인정받아왔다. 기획홍보팀 기획담당 부사장을 맡아온 장 부사장은 원 소속사인 삼성물산으로 원대복귀하고, 홍보파트장을 맡아온 윤 부사장은 원 소속사인 삼성경제연구소 대신 삼성물산으로 발령을 받았다.
삼성물산은 주요 계열사들 지분을 골고루 보유해 지주사 후보 영순위로 거론됐을 만큼 그룹 내 입지가 높은 계열사다. 장충기-윤순봉, 두 부산고 선후배의 가세로 삼성물산 내 특정 부서가 그룹 살림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