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유가 등 악재로 주식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SK C&C’ 공모가를 높이기 위해 상장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사진은 주가 곡선 이미지와 최태원 회장 합성. | ||
그런데 최근 SK C&C 상장 작업이 돌연 중단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SK가 지주사 행위제한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하는 시한은 내년 6월. 안 그래도 급한 이때 지주사 전환 작업의 핵심이 될 SK C&C 상장을 멈춘 까닭은 무엇일까.
IT 솔루션 업체인 SK C&C는 지난해 매출액 1조 1609억 원, 당기순이익 1977억 원을 올린 알짜 계열사다. 매출액의 35%가 SK텔레콤 물량에서 발생할 만큼 그룹 내 의존도가 큰 동시에 최태원 회장이 지분 44.50%를 보유하고 있어 ‘그룹이 불려주는 최 회장의 사금고’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룹 내에서 SK C&C가 갖는 또 하나의 상징성은 지주사 SK㈜의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지분 27.47%를 보유해 지분율 2.22%에 불과한 최 회장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렇다보니 ‘최태원→SK C&C→SK㈜→SK텔레콤·SK네트웍스→SK C&C’로 이어지는 기형적 지배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순환출자구조 탈피를 위해 SK는 지난 3월 이사회에서 SK C&C 상장을 결정, 올 7월께 상장 완료가 예상됐다. 그런데 지난 2일 SK C&C는 돌연 상장철회 신고 공시를 낸다. ‘최근의 급격한 시장상황 악화로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움에 따라 금번 공모를 추후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는 이유를 달았다. SK C&C의 공모희망가(주당 11만 5000~13만 2000원)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 같아 상장을 미룬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유가 사태 등으로 인한 국제경기 악재가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대표적인 우량주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5월만 해도 15만~16만 원을 오가던 SK㈜ 주가는 6월 들어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린 끝에 7월 9일 종가 11만 8000원을 기록 중이다. SK C&C 지분 30%를 보유한 SK텔레콤 주가 역시 5월 한때 21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6월 들어 18만 원대까지 미끄러졌다가 7월 9일 현재 19만 4500원으로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증시 지명도가 낮은 SK C&C 상장 특수가 SK㈜나 SK텔레콤의 후광을 발판 삼아 이뤄져야 할 것임을 감안하면 경영진 입장에서 11만 원 이상의 공모희망가 달성에 회의적 시선을 가질 법한 상황이긴 하다.
일각에선 SK C&C의 공모희망가가 다분히 비현실적이었다는 평도 내놓는다. SK C&C보다 매출규모가 큰 업계 선두주자 삼성 SDS와 LG CNS 역시 SK C&C와 마찬가지로 비상장 법인이다. 이들 주가는 최근 장외거래시장에서 각각 7만 2000원, 3만 7000원대를 기록 중이다. 아무리 상장 특수가 있다 해도 SK C&C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상장 연기를 결정한 SK C&C는 당초 목표로 한 공모희망가 달성을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SK C&C에 대한 대규모 물량지원이나 SK㈜ SK텔레콤 등의 주가 반등을 위한 자사주 관리 등도 예상된다.
SK C&C가 11만 원 이상의 공모가격을 포기할 수 없는 배경으로 대주주로 참여 중인 SK텔레콤의 이해관계가 거론된다. SK텔레콤은 SK C&C 지분 30.00%(600만 주)를 갖고 있다. SK C&C 상장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통신시장에서의 입지 강화를 위한 SK텔레콤의 든든한 인수·합병(M&A)용 실탄이 돼 줄 전망이다. SK텔레콤이 보유한 SK C&C 지분을 공모희망가 최저치인 주당 11만 5000원으로 환산하면 6900억 원이 된다. 주가가 1만 원만 오르내려도 600억 원의 차이가 난다.
SK텔레콤의 SK C&C 지분 매각과 관련해 휴맥스 인수설이 주목을 받아왔다. 한때 증권가에선 ‘SK텔레콤의 휴맥스 인수가격이 주당 2만 7000원으로 결정됐다’는 M&A 합의 소문까지 퍼지기도 했다. 이에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 6월 11일 SK텔레콤에 휴맥스 인수설에 대한 공시 요구를 했으며 SK텔레콤은 즉각 공시를 통해 ‘인수 추진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그럼에도 인수설이 주목을 받는 것은 통신업계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IPTV(인터넷 TV) 사업 때문이다. 얼마 전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자극받은 KT는 자회사 KTF와의 합병 추진을 통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위용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만약 SK텔레콤이 셋톱박스 업체 휴맥스를 인수하게 된다면 KT-KTF 조합에도 밀리지 않을 IPTV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SK텔레콤이 SK C&C 주식을 얼마에 팔 수 있느냐에 따라 통신시장 구도 재편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공모희망가를 낮추기 어려운 또 하나의 배경으로 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포석이 거론된다. 최태원 회장은 SK C&C 지분 44.50%(89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 명의 890만 주가 증시에 풀릴 경우 이는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든든한 밑천이 될 수 있다. 만약 SK C&C 상장가격이 주당 11만 5000원에 이뤄질 수 있다면 최 회장은 지분 매각으로 1조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돈을 모두 지주사인 SK㈜ 지분 매입에 투입한다면 18%가량 매입이 가능하다.
주요 주주 이탈로 인한 최 회장의 SK C&C 지배력 상실을 막기 위해 최 회장이 보유한 SK C&C 지분과 SK㈜ 자사주 간의 주식 스와핑을 통해 최 회장의 SK㈜ 지분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최 회장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SK㈜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SK C&C 주가가 최대한 SK㈜ 주가에 근접해야 한다.
기존에 최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SK㈜ 지분 2.22%와 SK㈜ 자사주 13.81%까지 고려하면 SK C&C 상장은 최 회장이 SK㈜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주사제하에서 SK㈜만 지배하면 그룹 전체를 장악하게 되므로 최 회장은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공 같은 치욕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아도 된다.
공모희망가대로만 가면 최 회장은 그룹 지배력을 10배 이상 높일 수 있지만 내년 6월까지 순환출자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다. 간절히 원해온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일단 시장의 기대치를 끌어 모아야 하는 지상과제가 최 회장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