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부도 가능성에 대해서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보는 것이라는 것이 명동 사금융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과 불화나 근심이 있는 가정을 방문해보면 집안 공기조차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화목한 가정은 살림이 잘 정리·정돈되어 있고 청소 상태가 좋으며 손님의 방문에 가족들도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 반대로 불화나 근심이 있으면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고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불안한 감정은 물론이고 오자마자 ‘언제 가나’ 하는 불안감이 들게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화분은 시들어 있고 청소 상태도 불량하고 책상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고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들의 분위기가 무관심하거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부도가 나기 직전이거나 부도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몇몇의 사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에 한참 벤처붐이 불던 몇 년 전이었다. 대형 통신사에 기계를 납품하는, 벤처치고는 상당한 연매출(200억대)을 올리는 제법 알려진 기업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창업투자회사의 애널리스트와 동행했다. 이 회사는 서울 강남 대로변 대형빌딩에 입주해 있었고 들어가 보니 사무실 인테리어도 멋졌다.
그러나 방문을 해보고 곧 부도날 회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우선 현관 입구에서부터 담당 부서장을 만나러 가는 20m 정도의 거리에서 우리는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고 인사도 못 받았다. 오히려 직원들이 ‘또 웬 놈들이야’ 하는, 그런 표정과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만나려고 하는 부서장도 자리에 없었다. 그의 자리 앞에 섰는데도 주변 직원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어느 여직원의 모니터 화면은 구직 사이트였다.
잠시 후 담당 부장이 나타나고 조그만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상담을 마친 후 필자는 애널리스트에게 “투자하면 안 된다. 명동 사금융 시장에서도 대출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이 회사는 2개월 후에 부도를 내고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방문할 당시에는 직원들 급여가 이미 3개월이나 연체되고 있었다.
최근에 부도를 낸 제조업체 A 사의 이야기다. 이 회사는 매출액도 많고 기술력은 우리나라 최고를 자랑할 정도였다. 살펴보면 다만 무리한 설비투자로 현금이 없다 보니 재무상태가 형편이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부도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히 부도 1개월 전 A 사의 임원과 우연히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고 늦은 시간에 A 사를 방문하게 됐다.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난 밤 10시쯤이었다. M&A를 위한 서류를 만든다고 해 몇몇 주요 간부들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비밀스럽고 스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연히 M&A와 관련된 일이라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사무실 전체와 임원들의 공간 배치를 보면서 이건 완전히 의사소통의 단절을 보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각자 따로 노는 뜻한 분위기였다. 생각해 보니 전화를 해도 바로 받는 적이 없었다. 아예 통화가 안 되거나 받아도 한참이 걸렸다. 임원에게 전화를 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이 회사도 부도를 내고 말았다.
반면에 건강한 기업들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기업 중에 사훈을 ‘정리정돈’으로 정한 회사도 본 적이 있다. 사무실도 오래된 건물이지만 깨끗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리고 원칙과 질서가 철저하다는 느낌도 같이 받는다. 제조업체이다 보니 세계 각국에 공장과 자회사가 많지만 일사불란하게 경영을 하고 있다. 아마도 당분간 이 기업은 탄탄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명동에서 기업이 부도가 날 것을 미리 아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급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명동 사금융 시장을 찾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휘장사업자로 부도가 난 K 사가 있다. 이 회사의 CP(기업어음) 발행 조건이 처음에는 6개월에서 3개월로, 또 2개월, 1개월로 줄어들었다. 융통어음(순수하게 자금조달 목적의 어음)까지도 같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 납품한 업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집단으로 소송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휘장사업은 한 품목당 한 업자와 계약을 해야 하는데 K 사는 한 품목당 여러 업자와 계약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상도의를 어긴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자금 조달이 다급해져 기간이나 금리 같은 조건을 따질 수 없게 됐다. 결국에는 시장에서 예측한 바와 같이 월드컵이 끝나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부도가 났다. 뿐만 아니라 특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마도 ‘일’을 벌일 당시 K 사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다.
명동 사금융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은 사업 확장 등 정상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기업에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온다. 내부 문제나 무리한 경영, 비도덕적인 경영으로 인하여 자금 부족도 발생하고 경영권 다툼도 생기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동에서는 기업들 사정을 속속들이 듣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론’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등에 묻은 허물을 보지 못한다. 얼굴에 묻은 밥풀도 거울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명동시장은 기업에게는 거울 같은 존재다. 퉁퉁 부은 얼굴, 게슴츠레한 눈, 헝클어진 머리로 애인과의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은 없다. 거울을 보면서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간다. 거울은 소위 ‘쌩얼’(맨얼굴)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쌩얼’을 잘 알고 있는 곳은 명동이다. 명동 사금융 시장은 기업의 거울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한치호 ㈜중앙인터빌 상무 one1019@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