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제강이 쌍용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우리사주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획득해 손쉽게 인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사진은 쌍용건설 건물. | ||
쌍용건설 우리사주는 현재 쌍용건설 지분 17.53%를 가지고 있다. 최대주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이은 2대주주. 여기에 쌍용양회공업 지분 6.13%를 더하면 우리사주의 우호지분은 23.53%로 늘어난다. 따라서 캠코 등이 속해있는 채권단 지분 50.07% 가운데 14% 이상만 매입해도 우리사주는 채권단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등극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사주의 지분 매입에는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지난 2003년 채권단으로부터 M&A에 노출될 경우 최대 24.72%까지의 지분을 우선적으로 매입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획득했기 때문. 이는 199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쌍용건설이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2003년 흑자로 돌아선 것에 대한 채권단의 보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문제는 가격. 그동안 M&A 과정에서 우리사주는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재계에서는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금 모집에 우리사주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우리사주는 지난 6월 국민연금 사모펀드로부터 4000억 원가량을 유치하는 계약을 성사시키며 자금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냈다. 동국제강이 캠코에 최종 인수가로 써낸 금액이 대략 주당 3만 1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사주가 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지분 24.72%(약 713만 주)를 모두 매입했을 때 드는 금액은 2200억 원가량이다. 따라서 우리사주의 지분매입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STX 웅진 등 많은 기업들이 쌍용건설에 군침을 흘렸으면서도 막상 M&A에 뛰어들지 못했던 것도 우리사주가 자금을 확보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수포로 돌아갈 확률이 컸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0년대 이후 이뤄진 M&A에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도 인수에 실패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영진M&A연구소 김영진 소장도 “우선매수권을 청구할 우리사주가 승리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국제강이 M&A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동국제강 관계자는 “해외 건설을 비롯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사주가 행사할 권리는 최대한 존중하겠지만 우리사주 측에서도 누가 진정 쌍용건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지 신중히 생각해 판단해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우리사주는 보다 공격적인 모습이다. 지난 7월 15일에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동국제강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사주는 이 자료에서 동국제강의 쌍용건설 인수는 시너지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과 그 동생인 장세욱 부사장의 재산 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속임수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우리사주는 현재 주가가 1만 6900원(7월 17일 종가)인 쌍용건설의 지분을 동국제강이 3만 1000원대에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에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금액은 입찰에서 2위를 차지한 남양건설보다 1만 원 이상 높은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리사주 내부에서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으로 동국제강이 인수전에 참여한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쌍용건설의 한 관계자는 “사실 3만 1000원이면 힘들긴 하지만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저 쪽에서 정말 인수할 의사가 있어 우리를 포기시키려 했다면 그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불렀어야 했다. 어쨌든 피해를 본 것은 현재 주가보다 두 배가량 비싼 금액에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 우리”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우리사주의 주장들에 대해 동국제강은 “아직 인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같다”라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우리사주가 한 수 아래로 접어뒀던 동국제강이 쌍용건설 인수전에 나선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란 말도 들린다. 이 때문에 더욱 우리사주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과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내긴 했지만 기업 규모에서 ‘급’이 달랐던 터라 그다지 각별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사주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때 자칫 나올지도 모르는 ‘반란표’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사주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현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국제강에게 인수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기류가 더 강하다”라고 이를 뒷받침했다.
이와 관련해 동국제강에서는 “쌍용건설 직원들이 받아들일 만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것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한 동국제강 일부에서는 우리사주가 사모펀드로부터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쌍용건설 직원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사주는 “국민연금 사모펀드는 가장 건전하고 투명한 펀드다. 우리와 돈독한 신뢰관계를 가지고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지금 동국제강과 우리사주는 정밀실사 여부를 놓고도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동국제강은 향후 약 한 달간의 정밀실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우리사주는 ‘어차피 인수도 하지 못할 동국제강에게 우리의 영업기밀을 보여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사주 관계자는 “동국제강 입장에서는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해외 토목건축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 큰 소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현재 우리사주는 정밀실사 전에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캠코에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캠코는 “계획된 일정대로 M&A를 진행할 것이다. 한쪽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우리사주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이에 대해 우리사주는 “굳이 원칙을 고집하고 있는 캠코를 이해할 수 없다. 피땀 흘려 기업을 회생시킨 임직원들의 노고를 일정부분 감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동국제강은 “우리가 거론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캠코에서 정하는 대로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