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신원 SKC 회장(맨 앞)이 SKC지분을 조금씩 늘려가 분가와 관련 눈길을 끌고 있다. | ||
SK 총수일가의 큰형님 격인 최신원 회장이 사촌동생 최태원 회장 품에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 아래 최신원 회장의 분가 노력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관심이 쏠렸다. 그룹에선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최신원 회장은 SKC 지배력을 조금씩 늘려가며 분가를 향해 ‘뚜벅뚜벅’ 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SKC 대주주 명부에 이름이 없었던 최신원 회장은 2004년 초부터 지분을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2006년 초까지만 해도 1%에 미치지 못했던 지분율은 2년 반이 지난 사이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재계 일각에선 ‘최신원 회장이 돈 생길 때마다 지분을 사들인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로 지난 2년여 동안 SKC 공시자료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최신원 회장의 지분변동 내역 신고였다.
최신원 회장은 최근 들어 지분 늘리기에 가속페달을 밟는 듯하다. 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6월 16일 SKC 주식 2만 주, 19일 5000주, 25일 5000주, 그리고 7월 4일 1만 주를 차례로 사들였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이 기간 동안 주식 4만 주를 취득하기 위해 최신원 회장이 들인 금액은 7억 5000여만 원. 이로써 지분율을 종전의 2.81%(101만 8203주)에서 2.92%(105만 8203주)로 늘렸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7월 5일 동생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케미칼 지분 2500주(0.02%)를 사들이면서 SK케미칼 주주 명부에도 이름을 올렸다. 7월 15일과 21일 양일에 걸쳐서 SK텔레콤이 최근 인수한 하나로텔레콤 지분 2만 주(0.01%)를 취득하기도 했다.
반면 최태원 회장은 어수선한 최근 몇 달을 보내야 했다. 지난 2003년 이후 5년을 끌어온 이른바 ‘SK사태’의 대법원 판결이 지난 5월 29일에서야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부당 내부거래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최종 선고했다.
그런데 최 회장은 대법원 판결을 한 달 앞둔 4월 28일 검찰 측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고를 취하해 시민단체로부터 ‘광복절 특사를 의식한 것’이란 비난을 듣기도 했다. 재판 계류 중인 사안은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2심 확정 상태에서 특사를 기대한다는 해석이었지만 SK 측은 이를 부인한 바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 ||
업계에선 최태원 회장이 이런저런 부침을 겪는 사이 최신원 회장이 자사 지분율을 급격히 늘린 것에 주목한다. SK 측은 “아직 구체적인 것이 없다”고 밝히며 확대해석을 경계해왔지만 최신원-최창원 형제의 분가설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신원 회장이 분가를 원하는 반면 SKC를 단단히 쥐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재계 인사들의 대체적 관측이었다.
아직 SK㈜가 지닌 SKC 지분 42.50%를 따라잡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최태원 회장이 최근 갖가지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최신원 회장이 SKC에 대한 장악력 높이기 시도를 진행한 점을 ‘분가 의지 표출용’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한때 전량 매각했던 SK케미칼 지분을 소량이나마 다시 사들인 것도 최신원-최창원 형제의 ‘공통분모’를 보여주려는 상징적 행동으로 비치기도 한다.
최근 SK 계열사들의 SK증권 지분 매각설이 분가설과 관련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05년 SK생명(현 미래에셋생명)이 미래에셋증권에 매각되면서 비주력 분야로 평가된 금융계열사 SK증권에 대한 매각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SK는 줄곧 부인해왔지만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사 가치가 올라가면서 SK가 주력사업 M&A를 위해 SK증권을 활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각종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지난 5월 15일 유가증권시장본부는 SK네트웍스와 SKC에 대해 ‘미국 GE그룹으로의 SK증권 지분매각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SK증권의 최대주주는 지분 22.43%를 보유한 SK네트웍스며 SKC가 지분율 12.26%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두 회사는 즉각 공시를 통해 ‘매각을 진행하거나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소문은 SK증권의 주가 상승 요인이 되기도 했다.
SK증권은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각을 통한 실탄 보유고 강화를 노려봄직하다. 그런데 최신원 회장의 SKC가 2대주주인 점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SKC가 보유한 SK증권 주식 4000만여 주를 7월 23일 현재 주가 2085원에 매각한다고 치면 SKC는 8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SKC가 자사주 13%가량을 사들일 수 있는 금액(7월 23일 현재 SKC 주가 1만 7900원 기준). 최신원 회장의 SKC 분가를 향한 또 하나의 동력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04년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분가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는 모습으로 진행돼야지,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끊임없이 제기돼 온 SK 총수일가 분가 논의에 대해 최태원 회장과 최신원 회장이 각자 어떤 셈법을 갖고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