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전무(왼쪽), 정의선 사장. | ||
외아들인 이재용 전무와 정의선 사장은 이변이 없는 한 삼성과 현대차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각종 사건들로 인해 경영권 승계 작업을 가속화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전무는 삼성특검 수사 여파로 4월 22일 삼성 쇄신안을 통해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 자리에서 물러나 해외 순환 근무를 통한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이는 열악한 환경의 해외 근무를 통해 편법 증여 논란을 지우고 승계 명분을 인정받으려는 것으로 풀이됐다.
정 사장은 지난 3월 기아차 대표이사직에서 2년 만에 물러났고 현재 사장직만 유지하고 있다. 거듭되는 실적저조로 인한 기아차 위기설이 정 사장의 대표 직함을 빼앗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베이징올림픽은 이런 두 사람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우선 베이징올림픽 공식파트너인 삼성은 이번 올림픽을 통한 홍보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그렇다 보니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 누가 베이징 현지에서 삼성그룹의 ‘얼굴’ 역할을 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려왔다. 현 IOC위원인 이건희 전 회장의 상징적 활동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삼성특검 관련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도 선고받았다. 하지만 남은 항소심 재판과 건강상의 문제 등 때문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진다.
해외 인지도가 높은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미 현업에서 물러난 상태. 이렇다 보니 이재용 전무가 올림픽 기간 동안 중국 현지에서 얼굴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이윤우 부회장 등 수뇌부가 이 전무와 함께 8월 초 베이징행 비행기에 오를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에게 이번 올림픽은 5일 베이징시 현지 삼성전자 기업홍보관 개관 등 올림픽 공식파트너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중국 현지에 브랜드 인지도를 키울 절호의 기회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무대에서 ‘삼성 간판’으로서 이 전무의 역량 과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명분 축적의 기회가 될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서 삼성 쇄신안을 통해 백의종군을 선언한 이 전무의 첫 해외 근무지가 중국으로 알려지자 ‘올림픽을 염두에 둔 것’이란 시각이 퍼지기도 했다.
한편 정의선 사장은 실적 논란 속에 지난 3월 기아자동차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국내무대보다는 해외현장 활동에 주력해왔다. 지난 5월 현대차그룹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는 데 정 사장과 빌 게이츠 당시 사장과의 개인적 친분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정 사장이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을 오가며 직접 협상을 주도해 얻어낸 결실로 전해진다.
최근엔 베이징올림픽 개막에 맞춘 홍보활동에 전력을 쏟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7월 31일 베이징에 있는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대한민국 양궁 응원단’ 발대식을 개최했다. 양궁이 전통적인 효자종목인 데다 정의선 사장이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 거는 기대감이 커 보인다.
아시아양궁연맹 회장도 겸하고 있는 정 사장은 회장 자격으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재계 소식통들은 “한국의 메달밭으로 불리는 양궁 종목에서 승전보가 전해질 때마다 양궁협회에 대한 감사 언급이 나올 텐데 이것만으로도 정 사장의 홍보 활동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입을 모은다.
아시아양궁연맹은 지난 7월 14일부터 23일까지 10일간 평양에서 북한의 양궁감독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실시하기도 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회장인 정 사장이 일본은 물론 북한에까지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렇듯 주위에선 기대가 커 보이지만 이재용-정의선 두 황태자의 베이징 활동이 온통 장밋빛 전망만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재용 전무의 경우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관련 핵심인물인 만큼 8월 중에 이뤄질 항소심 공판과정의 불똥이 국내에 없을 이 전무를 향할 수도 있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1심 집행유예 판결이 ‘면죄부 논란’을 불렀던 터라 항소심 재판부와 검찰 측이 ‘1심보다 형량이 낮아질 것’이란 삼성 측의 기대감을 불편하게 여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까닭에 삼성 정보 담당 직원들이 최근 들어 이 전무의 베이징행에 대한 각계 여론을 살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 사장은 이 전무처럼 여론의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겠지만 대신 중국 현지 사정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중국과 베이징시 당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교통흐름과 대기환경 개선 등을 위해 차량 운행 홀짝제, 화물차 시내 진입 통제 등을 하는 바람에 베이징 현대차 공장 가동률이 50%대로 떨어졌다. 정 사장이 올림픽 특수를 누리러 온 사이 회사는 ‘올림픽 불황’을 겪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