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여 도피 행각을 벌인 끝에 다시 수인의 신세가 된 재벌가 로열패밀리 박중원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人生流轉)이 화제다. 박 씨는 지난 2005년 초반까지만 해도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 상무를 맡아 여느 재벌 자제들과 다를 바 없이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평탄한 삶을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이 해 여름 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부친인 고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 일가에서 퇴출되면서 박 씨 역시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두산에서 쫓겨나고 절치부심 끝에 2007년 뉴월코프라는 코스닥 상장사 CEO(최고경영자)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지만 재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8년 아버지 박용오 회장이 중견건설사인 성지건설을 인수하자 같은 해 4월 이 회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불과 3개월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돼 철창신세를 지면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뉴월코프를 자본 없이 인수하고도 자기자본으로 인수한 것처럼 공시해 주가를 폭등시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로 구속 기소돼 1·2심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 와중에 부친이 극심한 경영난 등을 이유로 2009년 11월 자살하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구속집행정지로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은 박 씨는 형 박경원 당시 성지건설 부회장(49)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당시 박 전 회장이 남긴 유서에는 자신의 두 아들을 두산가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두산그룹과 박 전 회장 가족은 남보다 더 못한 사이를 계속 유지해 왔다. 박 전 회장의 장남 박경원 부회장은 아버지 사망 후에도 1년 5개월가량 더 성지건설의 대표를 맡아 회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두산 측에서 단돈 10원짜리 한 장 보태주지 않았으며 공사 수주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 때도 두산 측이 성지건설을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는 게 당시 성지건설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전언이다.
또한 이 인사는 “박경원 전 부회장과 함께 들어온 20여 명의 두산 출신 임원·팀장급 직원들도 박 전 부회장의 퇴사를 전후해 모두 회사를 나가서 현재 박 전 부회장의 근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회사 파탄 등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으로 보유주식이 전량 소각된 박경원 전 부회장은 2011년 4월 성지건설을 떠난 후 외부에 모습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박중원 씨가 다시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는 처지가 된 것은 지난해 3월. 박 씨가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홍 아무개 씨(30)에게 세 차례에 걸쳐 빌린 1억 5000만 원을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고소당하면서부터다. 박 씨는 지난해 11월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잠적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씨에 대해 12월 31일 기소중지(지명수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명 수배 후 약 3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난 21일 밤. 신고를 받고 출동해 박 씨를 검거한 송파경찰서 경찰관은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며 자신의 신원을 부정하던 박 씨를 경찰서로 임의 동행해 자백을 받아냈다. 수배관서인 성북경찰서로 인계된 박 씨는 이 경찰서 유치장에 일주일 정도 수감됐다가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됐다.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지난해 이미 수사 종결돼 11월 17일 영장이 발부된 사건”이라며 “검찰 송치 전 신병을 확보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기존에 수사 종결된 사기사건 외에 추가로 공문서 부정행사와 절도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박 씨가 지난 1월 중순 후배 이 아무개 씨(38)가 운영하는 인천의 한 음식점에 들렀다 이 씨의 운전면허증을 훔쳤다는 것이다.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검거 시 새로 추가된 절도와 공문서 부정행사 등의 혐의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인천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 체인 두 곳을 운영하는 박 씨의 후배 이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씨가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훔친 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두산 ‘형제경영’ 몰락 풀스토리 원수처럼 싸운 후 ‘절연’ 2005년 7월 고 박용오 전 회장이 그룹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동생인 박용성 현 두산중공업 회장(셋째)과 박용만 현 그룹 회장(다섯째) 등이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낸 게 발단이었다. 곧바로 두산그룹 측은 박 전 회장을 맹비난하며 그룹에서 퇴출하는 초강수 조치까지 뒀다. 당시 두산 측은 직전에 있었던 가족회의 내용을 공개하며 “박용오 명예회장이 박용성 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에 반발해 구조조정으로 가치가 상승한 두산산업개발의 계열분리를 주장했다”며 “자식의 개인 사업으로 너무 많은 지분을 매각해 두산산업개발에 대한 지분율이 0.7%밖에 되지 않는데도 박 명예회장 자신의 가족 소유로 해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선친의 ‘공동소유, 공동경영’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 측이 주장한 자식의 개인 사업이란 박 전 회장의 장남 경원 씨가 (주)두산 주식을 모두 매각한 뒤 2002년 폐쇄회로(CC)TV 전문업체 전신전자(현 어울림네트웍스)를 인수해 ‘딴살림’을 차린 것을 일컫는다. 경원 씨는 회사 경영이 순조롭지 않자 자연스레 두산그룹 측에 손을 벌렸지만 당시 그룹 내 실권을 쥐고 있던 박용성 회장은 조카의 구원 요청에 냉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당시 그룹회장이었던 박 전 회장은 동생 박 회장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갈등의 씨앗은 ‘형제의 난’이 있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잠재돼 있었던 것이다. 검찰 조사 끝에 박용성-박용만 형제뿐 아니라 박 전 회장도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입증돼 결국 피보다 뜨거웠던 경영권 다툼은 승자 없는 전쟁이 되고 말았다. 이후 두산그룹 오너 일가들은 박 전 회장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이 쪽 집안과는 전혀 왕래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