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경제정책점검회의를 열어 추가경정예산 편성 계획 등을 담은 ‘2013년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발표 당일 채권가격이 급등(채권금리 급락)했다. 정부가 성장률 전망을 기존의 3%에서 2.3%로 낮추면서 대규모 추경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니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이유와 함께, 대규모 국채 발행에 따른 정부의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정책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국책은행 계열 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경기침체가 가시화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높았는데 최근 한은은 요지부동이었다”며 “하지만 정부의 경기부진 판단이 내려지고 대규모 국채 발행마저 이뤄진다면 한국은행이 금리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의 예상”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금리인하는 증시에 호재인 게 교과서적인데, 왜 증시는 미지근할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금리인하는 보통 시중에 돈을 푸는 효과가 있는데, 이번 금리인하는 대규모 국채발행과 함께 그 효과가 상쇄된다. 즉 국채발행을 하는 만큼 정부가 시중의 돈을 거둬가는 효과가 있다. 즉 시장에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효과가 당장 나타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최근 증권사들의 보고서를 보면 역대 추경 당시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분석이 많은데, 이 역시 곱씹어 볼 대목이다. 1998년 12조 5000억 원의 추경이 편성됐을 때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심각했다. 위기 전 800~900선이었던 코스피가 500 아래로까지 떨어지다 보니 추경에 따른 증시 반등도 극적이었다. 이 해 코스피 상승률은 50%에 육박했다.
2001년 9·11 테러와 2003년 태풍 ‘매미’ 피해복구에도 각각 6조 7000억 원과 7조 5000억 원의 추경이 투입됐다. 일회성 사건에 따른 추경이다 보니 당시 코스피 증가율은 37.5%, 29.2%로 다소 낮아졌다. 그나마 코스피가 여전히 전고점보다 훨씬 낮은 1000포인트 아래였던 덕분에 절대수치로는 꽤 높은 상승률이 가능했다.
가장 최근 추경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이던 2009년이다. 무려 28조 4000억 원의 추경이 투입됐고 이후 코스피 상승률은 50%에 달했다. 이때도 코스피는 위기 전 2000을 넘었던 것보다 한참 아래인 1400선이었다. 게다가 이때 주가반등의 주역은 수출주 중심으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었다. 고환율 덕도 컸다. 증시 상승이 추경의 효과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추경 이후 주가가 오를 때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큰 폭으로 올랐다. 추경 때문에 증시가 올랐다기보다는 글로벌 증시가 호조를 보이면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던 것이 더 큰 이유였던 셈이다. 올해 코스피는 1900~2000의 박스권이다. 전고점 대비 13~15% 정도 아래다. 게다가 주가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기와 기업이익은 정점을 찍고 둔화되는 추세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추경의 경기자극 효과도 제한적이다.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효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2001년, 2003년, 2009년 2009년 4차례 추경 시 국내 증시 움직임을 분석해보면, 중형주가 가장 먼저 움직였고 대형주가 그 뒤를 이었다. 곽병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경, 특히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과 하반기 추경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2005, 2009년의 경우 상반기는 중형주, 하반기는 대형주가 양호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가 여전히 부진하고, 이탈리아 재정위기가 다시 유럽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점도 수출주가 많은 대형주보다는, 내수·서비스업 중심의 중형주에 관심을 높이는 이유다.
최열희 언론인
강만수 사퇴 효과 금융주 ‘휘파람’ 강 회장은 산업은행 민영화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산업은행에서 정책을 담당하는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떼어낸 이후에는 민영화를 위해 수신기반 확충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산업은행과 계열사인 대우증권을 통해 판매되는 예금이나 CMA(종합자산관리계좌)의 이자율이나 금리는 늘 경쟁사 대비 높았다. 이러다보니 경쟁사들도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자나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최고 신용도의 정부 보증이 제공되는 산은지주와 일반 민간금융회사는 조달비용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울면서 겨자를 먹었던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산업은행의 민간금융기관 전환에 회의적이다. 정책금융과 기업 구조조정 등을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 산업은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선임할 새로운 회장이 더 이상 출혈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강만수 회장의 민영화를 위한 고금리 수신 정책,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중소기업 대출금리 인하 정책은 교체 이후 상당 부분 수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은행 간 대출금리와 수신금리 경쟁을 크게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회장을 시작으로 KB, 우리, 하나 등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활발해지는 것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한 애널리스트는 “MB 정부와 강하게 연결된 금융지주사들은 주주권을 넘어서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는데, 강만수 회장 사퇴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에서 이를 개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당장 호·악재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외국인들에게 우리 금융회사들의 관치가 투자기피 요소로 지목돼 온 만큼 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강만수 효과’에도 불구하고 당장 금융주를 위협하는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에 투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의 고통분담이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주가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