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 ||
도라산물류센터는 남북 간 철도와 도로가 개통되고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생산량이 증가하자 남북의 교역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건립됐다. 32만 8000㎡(약 9만 9000평) 부지에 연간 160만 톤, 컨테이너 120만 개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통일부 관계자는 “물류센터가 들어선 이후 남북 간 물류 교류가 수월해졌다. 남북경협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라산물류센터를 관리하는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는 지난 7월 중순 물류센터 일부(5만 700㎡)를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 경영시키기로 하고 입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국내 물류업계 최강 대한통운과 대북사업의 절대강자 현대그룹의 현대택배가 맞붙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대한통운이 최종 낙점됐다. 출입사무소 관계자는 “물류사업만 놓고 보면 대한통운이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대북사업에서 현대가 가지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선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라고 밝혔다.
입찰 승리 후 대한통운은 “대북사업을 위한 전초기지를 마련했다”며 축포를 쏘아 올렸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그동안 자체적으로 북한 물류네트워크에 투자를 해왔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제 도라산물류센터와 연계해 사업을 해나간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반해 대북물류사업의 거점을 확보하려 했던 현대택배 측은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해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택배부문에서 우리가 대한통운에 다소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북사업만큼은 ‘현대’라는 이름이 통할 줄 알았는데 아쉽다”라고 털어놨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대북사업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라 현대그룹의 아쉬움은 더할 듯하다.
대한통운은 기쁨을 감추지 않지만 물류업계에서는 도라산물류센터의 사업성과 관련해 “아직은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택배회사 관계자는 “대북사업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수익이 난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이번 사업은 전체 물류센터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단 두 업체만 입찰에 참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 우리도 검토 끝에 불참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 대한통운이 현대택배를 제치고 도라산물류센터 사업권을 따냄으로써 대북물류사업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연합뉴스 | ||
그러나 도라산물류센터 사업권 획득을 수익성으로만 따질 것은 아니라는 게 그룹의 입장이다. 대북사업의 상징성이나 물류사업의 확장 등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 특히 박삼구 회장에게 도라산물류센터는 더욱 남다를 듯하다. 물류센터는 중국 시베리아 유럽 등지의 화물도 처리할 예정인데 이는 박 회장이 그토록 원했던 ‘글로벌 물류기업의 꿈’에 한 발 다가가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라산물류센터 사업권 획득으로 금호아시아나의 물류 계열사 통합 작업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초부터 그룹 내에 흩어져 있는 물류 계열사들을 대한통운 중심으로 합병하려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고유가 등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한통운은 전년 대비 매출액이 25% 늘어나며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는데 여기엔 그룹 내 다른 물류 계열사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했던 것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대북 물류사업의 성공이나 글로벌 물류기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열사와의 협력 시스템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 내부에서는 이번 사업권 획득이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 희망 섞인 견해가 있다. 그룹 고위 임원은 한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대한통운) 인수에 실패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대한통운이 계열사들 중 요즘 제일 잘나가고 있는데 신참한테 질 수는 없지 않느냐. 우리도 열심히 하자”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올해 금호아시아나는 유난히 많은 구설에 올랐다. 유동성 위기설, 국세청 조사설, 계열사 매각설 등 끊임없는 루머에 시달렸던 것. 이 때문에 그룹 이미지가 손상됐을 뿐 아니라 직원들 사기도 상당히 저하된 상태라고 전해진다. 따라서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초 대한통운을 인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입찰 승리가 그룹과 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그룹 이미지도 제고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고 전해진다. 대북사업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 역시 그동안 잦은 말 바꾸기 등으로 비난을 받아왔는데 대북사업을 통해 명예회복을 꾀할 수도 있게 됐다는 관측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