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테마주’의 주가가 곤두박질 치며 개미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사진은 박중원 씨. | ||
지금까지 재벌테마주의 선봉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동생인 구본호 씨였다. 구본호 씨는 동일철강과 엠피씨, 레드캡투어 등 손을 대는 족족 주가를 상승시켜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구본호 씨가 급등시켰던 주식들은 지금은 초라하게 찌그러져 있다.
엠피씨는 2007년 8월 10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구본호 씨가 포함되어 있다고 공시했다. 4000원대이던 주가는 구본호 씨의 투자 사실이 알려지기 전부터 하루에 1000원씩 뛰는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더니 공시가 있던 날 7520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연일 주가가 상승, 9월 12일에는 구본호 씨가 투자하기 전보다 네 배 이상 오른 1만 9300원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난 18일 현재 엠피씨의 주가는 3730원에 불과하다.
동일철강 주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구본호 씨는 지난해 8월 16일 동일철강 지분 9.71%를 장외매수했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9000원대이던 동일철강 주가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기 며칠 전부터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더니 공시 당일에는 1만 4740원으로 뛰었다. 이후에도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폭등, 9월 11일에는 무려 14만 584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18일 현재 동일철강의 주식은 2만 900원을 기록하고 있다.
2006년 9월 28일 구본호 씨가 사들였다고 공시했던 레드캡투어는 당시 주가가 8390원이었지만 이후 폭등하기 시작, 2007년 1월 3일에는 3만 6700원까지 올랐다. 현재 레드캡투어의 주가는 8830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당시 폭등했던 주가는 검찰수사 결과 구본호 씨가 레드캡투어 인수과정에서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속이고 외국법인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했기 때문으로 드러난 상태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박중원 씨의 사례도 비슷하다. 박중원 씨는 지난 2005년 ‘형제의 난’ 이후 일가가 두산가로부터 ‘제명’당했던 인물. 이런 박중원 씨가 2007년 3월 23일 뉴월코프 130만 주를 인수했다고 공시하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장에는 한 달 전부터 박중원 씨가 뉴월코프를 인수한다고 소문이 났었고 3000∼4000원하던 뉴월코프 주식은 공시 당일 1만 200원까지 뛰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유상증자를 한다고 밝혀 주가는 1만 275원까지 올랐었다. 이후 박 씨는 사업차질과 유상증자 실패 등 경영상의 이유로 같은 해 12월 회사 경영권을 양도했다. 이후 주가는 급락했고 8월 18일 현재 뉴월코프의 주가는 850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뉴월코프는 올 2분기 영업이익에서도 3억 5552만 원 적자를 내는 등 실적도 좋지 않다.
▲ 정일선 대표. | ||
당시 박중원 씨는 회사에 총 74억 원을 투자했다가 61억 원에 경영권을 넘겨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겉으로는 피해를 입은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이익을 거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중원 씨는 증권거래법상의 사기적 부정거래, 허위공시, 신고의무 위반을 비롯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형법상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분식회계) 위반 등 무려 7가지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박중원 씨와 공범들이 이러한 범죄행위를 통해 거액의 이익을 챙기는 동안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플라스틱 금형제조업체 IS하이텍도 검찰로부터 주가조작 수사와 관련된 압수수색을 받았다. IS하이텍은 지난해 6월 7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인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 아들인 정일선 BNG스틸 대표와 정 대표의 동생 정문선, 정대선 씨 등을 대상으로 3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정일선 대표는 유상증자 완료 후 113만 9601주(2.13%)를 확보해 IS하이텍의 최대주주가 되며 문선 대선 등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은 170만 9401주(3.19%)가 되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인지 IS하이텍의 주가 흐름도 뉴월코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평소 1000∼2000원 사이를 오가던 주가는 갑자기 지난해 6월 정일선 형제의 투자 공시 이후에는 3000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하락하기 시작, 8월 18일 현재 IS하이텍의 주가는 620원으로 곤두박질친 상태. IS하이텍의 영업이익도 급락, 올 2분기 77억 1214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적자액 49억 1788만 원을 넘어선 액수다.
IS하이텍이 검찰의 주목을 받은 것은 실질적인 소유주가 박중원 씨와 함께 뉴월코프 주가조작을 벌였던 조영훈 씨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도자기 창업주 김종호 씨의 손자인 김영집 씨가 투자했던 엔디코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시스템통합 및 스토리지업체인 엔디코프의 주가는 2006년 3월 7일 김영집 씨가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고 공시했을 당시 1465원이었다. 엔디코프 주식은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2007년 2월 상승하기 시작, 3월 16일 2175원을 기록했지만 감자를 앞두고 매매거래 정지에 들어갔다.
이 기간 중 김영집 씨는 보유주식 전량을 2만 원 정도에 매각했다. 이후 엔디코프는 주식 10주를 1주로 병합하는 90% 감자를 실시, 거래가 재개된 4월 6일 2만 3950원을 기록한 뒤 같은 달 11일에는 2만 695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1년 4개월여가 지난 18일 현재 주가는 3890원에 불과하다.
주가조작 혐의는 없지만 재벌가 자제들이 투자해 주가가 반짝 상승했다가 추락한 재벌테마주는 이밖에도 많이 있어 ‘묻지마 투자’를 한 개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