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자금 동원력이 가장 탄탄한 후보로 평가되면서 실탄 마련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전경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 | ||
워낙 ‘거함’이라 포스코와 한화 GS 등 인수 후보들 간의 신경전이 첨예해지다 보니 관련 소문도 무성해지고 있다. 공식 인수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기업 내정설이나 중도포기설이 나돌았을 정도다. 특히 가장 앞선 주자로 평가받는 포스코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인수전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포스코 한화 GS와 더불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의욕을 보여 온 두산이 최근 돌연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두산은 지난해 7월 세계 1위 소형 건설중장비 업체인 미국의 밥캣을 인수했으며, 그해 10월엔 연합캐피탈(현 두산캐피탈) 지분 20%를 인수해 해외 할부금융시장에 진출했고 올해 3월엔 국내 유압기기 1위 업체 동명모트롤을 인수했다.
최근 연이은 M&A 성공을 발판 삼아 대우조선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신흥 M&A 강자 두산의 인수 포기 배경은 효율성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인수전 가열로 시장가치가 10조 원까지 치솟은 대우조선을 인수하느니 그 돈으로 다른 업체를 서너 곳 더 인수하자는 식의 자체 판단이 섰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자금 동원력이 뛰어난 기업이 인수 후보로 거의 내정됐다’는 증권가 소문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 말이 맞는다면 주인공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포스코다. ‘거액의 인수대금을 큰 출혈 없이 치를 수 있는 곳은 포스코뿐’이라는 이 출처 불명의 소문 배경엔 금호아시아나그룹 자금 위기설도 연결돼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대한통운 인수 이후 자금 유동성 관련 악성 루머가 번져나가면서 금융위원회가 ‘풋백옵션 남발에 대한 규제 검토’ 의사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풋백옵션이란 풋옵션(금융자산을 약정된 기일이나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을 기업 인수·합병에 적용시킨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 자금 유치를 위해 ‘대우건설 주가가 3만 4000원을 밑돌 경우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을 조건으로 걸었다. 현재 대우건설 주가는 1만 2000~1만 3000원선으로 투자자들이 풋백옵션을 행사할 경우 금호아시아나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의 풋백옵션 남발 규제 검토는 대우조선 인수대금 마련 과정에서 재정 자립도가 가장 뛰어난 기업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두산의 인수 포기 선언 이후 한때 한화 또한 물러날 것이란 소문이 증권가에 나돌아 한화를 발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화는 예금보험공사와의 대한생명 인수 관련 국제중재 승소 이후 대한생명 상장작업 등 현금 마련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런데 두산의 인수 포기로 그 불똥이 한화로 튄 것이다. 한화는 인수 포기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최근 잇단 M&A를 성사시킨 두산이 스스로 인수 의사를 접고 상황이 호전된 한화를 두고 인수 포기설이 나돌아야 할 만큼 포스코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일까. 대우조선의 시장평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다보니 자금 동원력이 가장 좋다는 포스코의 단독 인수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윤석만 포스코 사장은 지난 5월 17일 철강협회 마라톤 대회에서 “포스코가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면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기업들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포스코에겐 신세기통신을 코오롱과 1% 지분 차이로 공동경영하다 난관에 부딪치면서 사업을 접은 경험이 있어 내부에선 공동인수를 달가워하진 않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 인사들은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인 포스코건설의 몸집 불리기에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지분 89.5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상장 이후 포스코가 지배에 필요한 지분만 남기고 나머지를 매각해 이를 대우조선 인수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4월 8일 공시를 통해 플랜트 엔지니어링 전문업체 대우엔지니어링 지분 60%를 인수,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알렸다. 여기 들인 돈은 2160억 원. 4월 18일엔 10억 원을 들여 포항연료전지발전 지분 25%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원래 이 회사는 포스코파워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었는데 주식 수를 80배 늘리는 유상증자를 통해 포스코건설이 대주주로 참여하게 됐다.
포스코건설은 국내 유수의 건설사들이 지분 참여하고 있는 청라국제업무타운의 지분율을 기존의 5.70%에서 6.84%로 늘리기 위해 지난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7억 원을 투자했다. 7월엔 계열사 우이트랜스가 주식 수를 158배 늘리는 유상증자를 하는 데 참여해 19억 원을 들여 지분율을 24.90%에서 27.00%로 늘렸다.
포스코건설 주식은 현재 장외시장에서 10만 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포스코가 현재 가치로 보유 지분 절반만 팔아도 1조 원이 넘는 돈을 거둬들일 수 있다. 상장 특수에 최근 사업영역 확장에 따른 기대감까지 감안하면 포스코가 수조 원의 상장이익을 벌어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스코가 상장을 앞둔 포스코건설의 몸을 급격히 불려 상장 기대치를 한껏 올리려는 배경엔 대우조선 인수 실탄 마련이란 계산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 다른 인수 후보들이 겪을 자금 확보의 어려움이 포스코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인지, 어떻게든 단독인수를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포스코건설 밀어주기로 반영된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에 귀가 기울여지는 시점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