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재계 정보통들은 추석(9월 14일) 이후 임·단협이 타결되면 정 회장이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 회장은 수시로 경영진 인사를 단행하는 스타일이다. 이른바 ‘깜짝 인사’. 그런데 그동안 정 회장은 재판을 받고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느라 수시 인사를 단행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특별사면 전에 인사를 단행하는 것은 조직을 흔들 수 있기에 자제했다.
하지만 사면을 받은 지금은 인사를 단행하는 데 걸림돌이 없다. 그동안 정 회장이 못했던 수시 인사를 모두 몰아서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그동안 특별사면을 의식해 일부 경영진들에 대해 맘에 안 들어도 꾹 참고 있었는데 이제 걸림돌이 없어져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할 방침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술렁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지금 인사 평가작업에 들어갈 시기라 사실 인사철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듯하다. 그러나 인사가 좀 빨라질 수는 있지만 수시인사는 아니다. 소문들이 좀 과장된 듯하다”고 밝혔다.
현재 인사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흘러나오는 소문은 ‘A급 태풍’의 위력이다. 우선 정 회장의 둘째사위로 금융 부문을 맡고 있는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장(사장)으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또 기아차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사장으로만 활동하고 있는 외동아들 정의선 사장에게 또 다른 역할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약 소문대로 인사가 이뤄진다면 오너 일가 중심의 친족 경영체제로 가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태영 카드’를 쓸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 회장이 비자금 사태를 겪으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친족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의 비자금 사건은 내부 임원의 고발로 표면화됐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태영 사장이 그룹 기조실로 가는 것에 내부의 여론을 살피는 듯하다”면서 “시기가 문제일 뿐 그 쪽으로 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용문 현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장(부회장)은 최근 송사에 휘말린 바 있다. 김 부회장은 2005년부터 현대차그룹의 한 협력업체의 대표이사를 맡았는데, 올 들어 하청업체로부터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당했던 것. 이 사건은 당사자 간의 합의로 원만하게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채기’는 남겼다. 기획조정실장을 정태영 사장으로 교체한다면 지난 4월 전격적으로 임명된 김 부회장은 1년도 안 돼 물러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태영 사장 이동설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며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정 사장에 관한 얘기는 오래 전부터 떠돌던 얘기다. 금융부문을 맡아 잘 해오고 있는 사람을 옮길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의 2선 후퇴에 대해서도 지난해부터 소문이 파다했지만 아직까지 건재한 상황. 최근 들어 정 회장 대신 해외 행사에 가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던 김 부회장의 향후 위상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대차 안팎에서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IB증권→현대차IB증권→HMC증권’ 등으로 회사 이름을 잇달아 바꾼 ‘간판 파동’으로 큰돈을 허공으로 날린 박정인 HMC증권 회장의 거취 문제도 곧잘 거론된다. 그러나 2005년 9월 고문으로 물러났다가 1년 만에 컴백, 현대차 비자금 사태 재판으로 손발이 묶여있던 정 회장을 대신해 ‘구원투수’ 역할을 해낸 박 부회장을 ‘팽’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밖에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일부 중진들에 대한 2선 후퇴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들은 대부분 정 회장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옛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출신 노신들. 정 회장의 수시인사 이면엔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후계구도에 대한 고려가 깔려 있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이 아들 충녕대군(후일 세종)의 안정적 승계를 위해 공신들을 모두 숙청한 것에 곧잘 비교되기도 한다. 어쩌면 정태영 사장을 중앙무대로 불러들이려 한다는 소문의 배경에는 ‘정의선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발판 다지기 노림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여러 소문대로 경영진 인사가 단행된다면 후속 임직원 인사도 잇달아 내야 하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그야말로 ‘인사 태풍’에 휘말리게 된다. 아무리 그룹 총수가 있다 하더라도 조직에는 경영진·임원에 의한 파벌이 있게 마련. 자신이 추종하는 경영진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임·직원의 거취도 달라진다. 당사자인 경영진은 물론이려니와 임직원들까지 정 회장의 입을 주시하며 추석 이후에 단행될지도 모를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선필 언론인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