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5월 19일 부동산업을 영위하는 ‘라온디벨롭’이라는 회사가 설립됐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빌딩 사무실 한 칸을 임차해서 자본 총액 5000만 원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의 등기임원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 아무개 대표를 비롯해 고 아무개 이사, 오 아무개 이사 등은 모두 당시 재계 서열 19위(공기업 제외)인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의 현직 임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등기이사로 올라와 있는 원 아무개 이사도 동양의 전직 임원 출신이었다. 또 최 아무개 대표는 현재도 동양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주)동양의 임원 명단에 고문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5명의 임원 중 감사만 제외하면 모두 동양의 임원이라는 사실은 미편입 계열사 즉 ‘위장계열사’를 의미한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중에는 ‘동일인이 다른 주요 주주와의 계약 또는 합의에 의하여 대표이사를 임면하거나 임원의 100분의 50 이상을 선임하거나 선임할 수 있는 회사’를 기업집단의 범위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실제 소유자를 따져봐야 하는 출자상의 계열사 요건 외에도 ‘A’라는 기업집단 측에서 현직 임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다른 회사의 등기이사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거나 인사교류가 있다면 동일인이 지배력을 갖고 관리하는 회사로 볼 수 있다”며 “이 경우 기업집단 A는 한 달 이내에 해당 회사에 대해 계열사 신고의 의무를 진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회사의 해산에 관한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11년 7월 11일 주주총회 결의에 의해 해산을 결정하고, 같은 해 10월 24일 청산종결을 끝으로 법인의 생명을 완전히 잃었다.
문제의 가회동 4층짜리 건물.
이 회사와 동양의 밀접한 관계를 추론해 볼 수 있는 대목은 한 가지 더 있다. 이 회사는 가회동 부동산을 매입한 당일 이 부동산을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동양파이낸셜과 동양에이앤디로부터 돈을 빌렸다. 채권최고액이 각각 18억 원과 39억 8400만여 원. 통상 채권최고액은 대출 원금의 130%까지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라온디벨롭이 두 동양그룹 계열사로부터 도합 최저 44억 5000만 원의 돈을 빌렸다는 얘기다. 근저당권 설정 말소 일자는 라온디벨롭이 이 부동산을 동양레저에 매각한 2011년 7월 8일이다.
이에 대해 동양 관계자는 “한정된 인원의 실무진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관련 업무를 맡다 보니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며 계열사 미편입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공정위 측에서도 이런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반복된 신고 누락이 아니고서야 누락경위서를 작성케 하는 수준에서 경고를 할 뿐 크게 문제를 삼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와는 별개로 이 부동산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양레저는 이 부동산을 매입하고 4개월 뒤인 2011년 11월 25일 국제신탁주식회사에 이 부동산을 신탁해 올해 1월 10일에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한 건의 계약이 더 발생한다.
지난해 12월 26일 동양레저는 이 부동산을 관계사인 동양네트웍스에 130억 7900만 원에 매각했다고 지난 1월 2일 최초 공시했다. 이사회 의결일도 같은 날이었다. 이 회사는 1월 25일 이 건에 대해 정정신고를 제출했다. 이사회 의결일이 부동산 매각 시점인 지난 12월 26일이 아닌 올해 1월 18일이고, 거래금액도 130억 7900만 원이 아닌 162억 3000만 원이라고 재공시한 것.
주목할 점은 세 차례에 걸쳐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의 이 부동산 거래 대금이다. 해당 부동산등기부 매매목록에 따르면, 애초 정 아무개 씨가 라온디벨롭이란 회사에 이 부동산을 넘길 때 거래가액은 44억 8800만 원이었다. 또 약 1년 6개월 뒤에 라온디벨롭이 동양레저에 이 부동산을 팔 때 거래가액은 54억 500만 원으로 나와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와중에서도 1년 6개월 만에 10억 원 가까운 차액은 약과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했듯 동양레저가 이 부동산을 최근 동양네트웍스에 팔 때는 매입가의 3배가 넘는 가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약 1년 6개월 만에 이번에는 자그마치 100억 원이 넘는 차액이 발생한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황상 이중계약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통상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세금 문제뿐 아니라 그밖에 다른 위법 행위에 이용됐을 가능성까지 의심해 볼 수 있는 거래”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